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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흐르는 소리

음운론이라고 하면 이름만으로도 머리가 아픕니다. 최소대립쌍이나 상보적 분포, 변별적 자질이라는 용어도 언어학을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게 합니다. 저는 언어학이 쉽고 재미있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늘 만나는 것이 언어인데 조금 더 쉽게 설명하면 언어학도, 음운론도 우리의 이야기가 됩니다. 소리의 예를 생각해 볼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리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특히 자음 중에는 어떤 소리를 좋아할까요? 기역부터 히읗까지, 쌍기역부터 쌍지읒까지 생각해 봅니다. 저마다의 매력이 있어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가 어렵네요. 문득 예전에 황순원 선생님께 어떤 작품이 가장 애정이 가냐고 여쭈었을 때, 한 작품을 이야기하면 다른 작품에게 미안하다고 답하시던 장면이 생각이 납니다.  
 
자음이라고 하면 첫소리만 떠올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음은 첫소리에서만 나는 게 아닙니다. 끝소리에도 나오고, 모음 사이에서도 나옵니다. 첫소리에 나오는 자음과 끝소리에 나오는 자음은 엄밀하게 말해서 같은 소리가 아닙니다. 또한 ‘바다’라고 할 때의 비읍과 ‘울보’라고 할 때의 비읍은 같은 소리가 아닙니다. ‘보배’, ‘바보’에는 비읍이 두 개 들어있지만 둘은 서로 다른 음입니다.
 
그래서 영어로 표시하거나 발음 기호로 표시할 때는 달리 표시합니다. 모음 사이의 비읍은 울림소리이고 첫소리의 비읍은 울림소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영어 사용자에게 한국어의 첫소리 비읍은 ‘p’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밥’의 비읍 소리도 서로 다른 소리입니다. 그저 우리가 같은 소리로 인식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언어학에서는 이런 경우를 한 음운으로 취급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말에서 리을 음은 유음(流音), 즉 흐르는 소리라고 합니다. 첫소리에서는 니은이나 소리 없는 이응으로 탈락합니다. 두음법칙이죠. 첫소리 법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첫소리에서 발음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말은 주로 외래어입니다. 리본이나 라디오가 그런 말이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리을의 끝소리와 어중에 나는 소리는 차이가 분명해 보인다는 점입니다. 보배의 비읍도 어중에 나는 소리가 울림소리지만 큰 차이를 못 느끼는데, 리을 음의 경우는 가만히 발음해 보면 완전히 다릅니다.  
 
달이라고 발음하면 혀끝은 입천장에 닿고, 소리는 혀의 양족으로 빠져나갑니다. 이것을 설측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랑을 발음해 보면 리을 음이 바르르 떨리는 느낌이 납니다. 혀끝이 입천장 쪽을 몇 차례 퉁기며 소리가 나는 겁니다. 만약 리을 음이 입천장을 퉁기지 않으면 혀 짧은소리(?)가 난다고 말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디귿 소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리을 음이 몇 차례 튕기면서 나는 소리라는 것이 재미있어서였을까요?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하는 단어에는 유독 리을 음이 중간에 들어가는 말이 많습니다. 제 직관으로는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몇 단어를 떠올려 볼까요? 우선 사랑이 떠오르네요. 예쁜 말이죠. 보람은 어떤가요?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우리나 소리도 있습니다. 노래나 바람, 서로라는 말도 중간에 리을이 들어갑니다. 그뿐 아니라 ‘-르-’가 어간으로 들어가는 말은 전부 리을 음이 떨리게 됩니다. 오르다, 부르다, 고르다, 따르다 등이 그렇습니다.
 
리을 음이 중간에 들어가는 말을 만나게 되면 작은 떨림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세상 살면서 우리에게 떨림을 주는 순간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가슴 떨리는 순간이 아닌가요? 우리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떨림 그 자체이죠. 노래의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보람 있는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소리 사이에서 리을 음의 떨림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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