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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전 러브레터에 담은 애틋한 사랑…영어·일본어 섞어 쓴 75통 편지

손녀, 조부모 유품정리 중 발견
일제·군정·한국전 등 시대 투영
깊은 감동의 따뜻한 사랑 전해
후손, 편지 속 장소 찾으려 방한

자넷 곽씨가 공개한 80년 전 연애편지(아래)와 1953년 흐뭇하게 웃는 가족 사이에서 서양식 춤을 선보이고 있는 조부모의 결혼식 사진. [자넷 곽씨 제공]

자넷 곽씨가 공개한 80년 전 연애편지(아래)와 1953년 흐뭇하게 웃는 가족 사이에서 서양식 춤을 선보이고 있는 조부모의 결혼식 사진. [자넷 곽씨 제공]

 
한반도의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를 거쳐 미국까지 사랑을 이어온 두 한인 남녀의 80년 된 러브레터가 발견돼 화제다.  
 
지난 2018년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손녀 자넷 곽(40·샌디에이고)씨는 옷장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박스 하나를 열어보고선 깜짝 놀랐다. 내용물은 노랗게 빛바랜 편지 75통.  
 
대부분이 30여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연애 시절 할머니에게 보낸 연애편지들이었다.  
 
곽씨는 그 시절 할아버지 곽종기씨와 할머니 정영숙씨의 사랑 이야기의 발자취를 찾아 지난 8일부터 오는 22일까지 한국을 방문 중이다.


 
곽씨는 “자유를 억압받던 일제강점기의 암울했던 시절에도 사랑을 나누며 서로에게 위안과 희망이 되었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는 모두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질 것이라 생각했고, 더 알고 싶어져 남동생과 한국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대구에 살며 1928년생 옆집 사는 동갑내기 친구로 만나 연인이 된 곽씨의 조부모는 할아버지가 서울대학교로 진학해 서로 떨어지게 되면서 편지를 주고받았다. 1943년에 시작된 연애편지는 그 뒤로 무려 10년이나 이어졌다.
 
당시는 황민화 정책이 추진되며 자유가 억압받던 시기였다. 경북여고를 다녔던 할머니는 총동원 체제 때 강제 동원돼 근로 활동을 해야 했다.  
 
또 언어가 통제된 탓에 할아버지의 편지도 대부분 일본어로 쓰였다. 하지만 편지 속 한국의 서정적 정서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곽씨는 “할아버지는 당대 한국의 유명한 시인들의 시를 인용해 할머니에게 사랑 고백을 전하는 로맨티스트셨다”며 “미군정 시기에 들어서부터는 편지의 서두는 항상 ‘To my darling(내 사랑에게)’로 시작했고 ‘You’re my sunshine, you're my higher love(당신은 나의 햇살, 당신은 나의 높은 사랑)’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셨다. 편지들을 발견한 후에 한자와 일본어가 많아 해석 도움을 받고자 SNS에 올렸는데 많은 분이 할아버지의 낭만적인 시적 표현들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편지

편지

이어 “아름다운 내용도 많지만, 당시 위태로웠던 시대적 상황도 적나라하게 담겼다. 북한이 서울을 침공했을 때 할아버지는 아는 사람을 통해 어렵게 편지를 전달하며 급박한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현실에 불안해하는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대구 집에 있던 감나무 얘기를 자주 하시며 함께 꾸려나갈 밝은 미래를 약속하셨다”고 말했다.  

 
결국 둘의 사랑은 할아버지가 대학을 졸업한 후 대구에 돌아가 할머니와 결혼을 하면서 결실을 보았다.  
 
두 아들을 낳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후 1989~1990년쯤 둘째 아들인 곽씨의 아버지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을 왔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할아버지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곽씨는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두 분이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운 이야기는 미래를 살아갈 자식들에게 또 다른 희망을 준다”며 “아무래도 한인 2세들에게 이런 시대적 어려움을 극복한 사랑 이야기는 생소하다. 요즘 K팝 등 한류가 널리 퍼지고 있는데 이렇게 당시 시대상과 역사가 담긴 러브스토리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 한국을 다녀와 갤러리 전시나 책 출판 등을 고려 중이다”고 말했다.
 
 자넷 곽씨가 공개한 80년 전 연애편지

자넷 곽씨가 공개한 80년 전 연애편지

남동생과 한국을 방문 중인 곽씨는 현재 경북대학교 김경남 사학과 교수와 함께 과거 할아버지·할아버지 자택과 편지 속 나오는 장소들을 방문 중이다. 일본강점기 때 주소이기 때문에 현재 주소를 찾기 위해서는 해당 관할지 중구청의 협조가 필요해 김 교수가 이를 돕고 있다.
 
김경남 교수는 “학술적으로 봤을 때 역사학과 기록학에서 일제강점기 학생들의 일상사라는 관점과 재미동포 역사의 연속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있을 거 같다”며 “자넷씨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기록을 소중히 남겨 놓았던 것처럼 그 기록을 남겨놓으면 후손들은 그것을 보고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수아 기자 jang.suah@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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