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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남자의 보험

성민희 수필가

성민희 수필가

TV 채널을 돌리다가 눈에 확 띄는 장면에서 손이 멈췄다. 이마에 주름 세 줄이 깊이 팬 남자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 KBS에서 방영한 ‘남자여, 늙은 남자여’라는 다큐다.  
 
요즘 들어 부쩍 칼럼이나 소설, 영화에 시니어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예전에는 조용히 세월만 흘리고 살던 시니어의 활동이 적극적으로 변하고 목소리가 커져 이제 주류가 되었다는 뜻일까. 시대를 지탱하는 주류 세대가 노년층이 되었다는 뜻일까. 나 역시 청년기는 이미 떠나보낸 지 오래고 장년기까지 흘러간 처지이고 보니 ‘늙음’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손수건을 적시는 남자의 눈물을 지나칠 수 없어 화면을 고정했다.  
 
 변두리 쪽방촌에서 홀로 살아가는 남자는 자신이 노년에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20년간 공장장으로 일했지만 기계가 디지털로 바뀌면서 본인의 기술이 필요 없어져 결국 밀려났다. 다른 곳에 취직을 하기에는 너무 늙었기에 그는 가족에게 얹혀사는 구박 덩어리로 전락하였다. 돈만 벌어다 주면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인 줄 알고 가족과의 소통에 무심했던 결과는 어려울 때 서로 보듬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젊어서 누리던 가부장의 권리는 더 이상 용납이 되지 않고 이혼으로 이어졌다. 그는 막강한 권위로 아내와 아이들의 대장 노릇만 하며 살아왔는데 큰소리치며 대우를 받았는데 막상 은퇴하고 나니 사회적 지위는 물론 가장의 위치마저 박탈되었다며 한숨이다. “돈 못 버는 사람은 아빠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는 눈물을 닦는다.  
 
남자의 자탄(自歎)에 대해 여자도 할 말이 많다. 남편들은 돈을 벌어다 주는 것으로 가장의 역할을 다했다는 그 생각이 문제라고. 독박 육아와 살림 남편의 무관심과 잦은 술자리 등에 지친 아내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나는 가족을 위해 밥 해주는 여자, 애 키우는 여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거죠.” 몇 명의 젊은 여자들이 찻잔을 앞에 두고 한마디씩 한다.  
 


아내의 입장으로서 가장 이혼하고 싶을 때는 어떤 이유로 마음의 상처가 깊어질 때라고 한다. 남편의 경제적 무능 때문에 이혼을 결정하는 아내는 거의 없다고 한다. 젊어서 와이프에게 잘 해두면 늙어서 호강한다니까. 한 여자가 농담처럼 말하고는 깔깔 웃는다.  
 
결론은 그렇다.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연민의 정을 쌓는 ‘관계’를 만들라는 것이다. 그것은 은퇴나 경제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젊을 때부터 열정과 에너지를 밖으로만 쏟을 것이 아니라 부인에게도 나누어주는 것은 사랑의 보험을 들어두는 것과 같다. 그러면 사업에 실패했을 때나 퇴직 후, 노년에 그 보험이 효력을 발휘한다. “내가 불리할 것 같으니까 전략과 전술을 바꾼 거지요. 히히히” 젊었을 때 남편은 하늘, 아내는 땅을 복창시키며 가족에게 군림했다는 남자가 잔뜩 쌓인 빨래를 개키며 하는 말이다. 이제 50대인 남자는 벌써 시대의 조류를 읽고 보험금을 열심히 붓는 중이다.

성민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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