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한 재일동포 작가가 책을 쓴 이유
지난 19일 도쿄(東京)도 마치다(町田)시,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시원한 주스 한 잔을 쭉 들이키더니 일본어로 빠르게 말을 하기 시작한다. 재일동포 작가 박경남씨다. 그를 만나게 된 건 100년 전 일어났던 간토(關東)대지진 때문이었다. 1992년 그가 내놓은 ‘두둥실 달이 떠오르면’엔 당시 조선인 300여 명을 구한 쓰루미(鶴見) 경찰서장 오카와 쓰네키치(大川常吉·1877~1940)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괴담에 6000명이 넘는 조선인이 무참히 살해당한 비극. 그 속에 존재했던 오카와 서장의 이야기를 그는 어떤 연유로 책에 담았을까.“저는 돗토리(鳥取)현에서 태어났어요. 학창 시절, 할아버지가 대지진 당시 도쿄에 갔다가 살해당할뻔한 이야기를 들은 뒤론 마음속에 공포가 움텄어요. ‘만약 이런 대재난이 또 일어나면 내 친구들, 이웃들은 나를 구해줄까’ 그런 생각이요. 일본 속 자이니치의 이야기, 조선반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40대가 되고서야 글 쓰는 일을 시작했어요. 우연히 오카와 서장 이야기를 들었고, 희망을 품게 됐어요.” 어렵사리 만난 오카와 서장의 아들은 당시 자료들을 그에게 보여줬고, 서장의 이야기는 그렇게 책에 담겼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책을 본 한국의 한 대학병원에서 오카와 서장 이야기를 들려달라며 연락을 해왔다. 서장의 아들은 고령이라 동행하지 못했고 대신 손자 오카와 유타카(大川 豊)가 그와 1995년의 어느 날 한국을 찾았다.
“강연 뒤 손자분 인사 차례가 됐어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조부가 그렇게 칭찬받을만한 일을 한 걸까 생각했습니다. 조부가 한 일은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평범하고 당연한 일입니다. 왜 조부의 이야기가 미담이 되고, 책에 실리게 된 걸까요. 당시 일본인이 조선인에게 너무 심한 짓을 했기 때문에 당연한 일조차도 칭찬받게 된 겁니다.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이 한마디밖에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이 말을 듣고 생각했어요. 오카와 서장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오히려 조선인 학살 사실을 제대로 전할 수 있다고요.” 그는 이 이야기를 또다시 책에 담아 알렸다.
도쿄에서 간토대지진 100주년 행사가 끝난 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간다. 지난 100년이 그러했듯, 불과 한 달 만에 무참히 스러져간 조선인들의 이야기가 잊히는 건 아닌가 조바심마저 난다. 한·일 관계가 훈풍을 탔다는데 일본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우리 정부도 뒷짐을 지고 있다. 박 작가의 말이다. “적어도 무엇이 중요한지, 사실을 전하는 것부터가 중요하지 않나요?”
김현예 / 한국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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