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전사자 고향찾아 4만마일…버몬트 구성열·김창화씨 부부
참전용사에 감사 여정 3년째
33개주 초교에 16만달러 기부
내년에 50개주 마치는게 목표
보은 행사 후세들이 이어가길
이들이 향하는 곳은 전사자들의 고향이다. 버몬트주에 사는 구성열(80), 김창화(77)씨 부부는 한국전 참전 용사들의 고향을 찾아가 전사자들의 이름으로 지역 초등학교 도서관에 책과 기부금을 전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전사자를 기리고 한국전의 뜻깊은 역사를 학생들에게 알리기 위해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벌써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0년 10월 버몬트주 리즈보로센트럴학교(Readsboro Central School)를 시작으로 지난 19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식스 마일 초등학교(Six mile Elementary School)까지 총 33개 주 33개 학교에 기부금을 전달했다.
구씨 부부는 현재 식스 마일 초등학교 방문을 마치고 플로리다, 아칸소, 켄터키주 지역으로 이어지는 전사자의 고향 방문 일정을 28일까지 진행하고 있다.
구성열 씨는 19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전사자 명단을 일일이 살피며 마음에 와 닿거나 특별한 이야기가 있으면 주마다 한 명씩 선정해 그들의 고향 지역 초등학교를 방문하고 있다”며 “켄터키주까지 가면 36개 학교에 기부금을 전달하게 되는데 내년까지 50개 주를 모두 마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일례로 식스 마일 초등학교의 식스마일 지역은 ‘찰스 헤이워드 바커(당시 18세)’ 일등병의 고향이다. 바커 일등병은 미군 제7보병사단 소속으로 경기도 연천군 천덕산 주변에서 중공군과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졌던 ‘폭찹힐(Pork Chop Hill)’ 전투에서 마지막까지 싸우다 전사한 청년이다.
구씨는 “바커 일등병의 이야기를 살펴보니 한국전에 참전하려고 부모 몰래 서명을 해서 15살 때 입대를 했다고 하더라”며 “그런 아이가 한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었는데 어떻게든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세 가지 선물을 들고 초등학교를 방문한다. 전사자를 기리기 위해 이름이 새겨진 명패, 한국전 역사가 담긴 책 그리고 기부금(5033달러)이다. 초등학생들을 만나 한국전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전사자의 이야기를 나누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일은 이들에게 가장 보람찬 일이다. 이번에 켄터키주 일정까지 마치게 되면 36개 초등학교 도서관에 총 18만1188달러를 전사자들의 이름으로 기부한 셈이 된다.
구씨 부부는 지난 2019년에 6.25 재단(625foundation.org)을 설립했다. 구씨는 “예전에 네팔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한인 2세 학생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한국전쟁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어 그때부터 교육 목적으로 재단을 설립했다”며 “한국전은 ‘잊힌 전쟁(Forgotten War)’으로 불리지 않나. 6·25 때 미국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는 아마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구씨 내외는 재단 설립 후 전사자 고향 방문 프로젝트를 위해 ‘리버티 워크(Liberty Walk·자유의 걸음)’ 행사를 매년 6월25일 마다 개최했다. 1마일을 걸을 때마다 일정액을 기부하는 행사다.
가족을 비롯한 이웃, 친지, 동창 등 모두가 후원자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한국에서도 행사가 진행됐다. 후원자들과 주한 미군이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미8군 기지를 거쳐 국립중앙박물관까지 함께 걸었다.
구씨는 “첫 리버티 워크 행사 때가 한국전 70주년이었는데 그때 걷힌 모금액이 5033달러였다”며 “그때부터 5033달러를 기부 금액으로 정했고 여러 후원자의 기금과 사비 등을 털어 재단을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구씨 내외는 직접 운전을 하고 기부할 학교에 방문한다. 대부분 시골 지역 학교라서 구석구석 다니려면 비행기보다 자동차가 낫다는 판단에서다. 이 때문에 동부에 살면서 캘리포니아 등 서부 지역까지 운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기부를 위한 운행 거리만 무려 4만 마일이 넘는다.
구씨는 경기고등학교(57회),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1965년)했다. 이후 1967년에 미국에 온 구씨는 뉴욕에서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체를 운영했다.
구씨 부부에게는 또 하나의 숙제가 있다. 차세대가 리버티 워크 행사를 이어받길 바라고 있다.
구씨는 “학교를 한 군데 정해서 교육구와 협의하고 결정이 되기까지 약 1년 정도의 준비 시간이 필요한데 젊은 친구들이 함께한다면 의미가 배가 될 것”이라며 “50개 주 방문 프로젝트가 끝나도 계속 리버티 워크 행사를 이어갈 수 있는 젊은이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전에서 전사한 미군은 3만7000여명이다. 7000여명은 여전히 실종(Missing in Action) 상태다.
자유의 걸음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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