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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목 한인회 첫 여성 이사장 “교회와 한인회는 내 인생의 전부”

독립운동가와 목회자로 한평생
도미 후 반세기 한인사회 봉사
초기 한인회관 건립에도 공헌

대한인국민회 총회관 앞에 서있는 이화목 여사.

대한인국민회 총회관 앞에 서있는 이화목 여사.

오늘날 LA 한인회관이 세워진 역사에 크게 공헌한 여성 지도자가 있다. 바로 이화목 여사(1898-1997)다.  
 
이화목 여사는 LA한인회의 전신인 남가주 한인회의 최초 여성 이사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1965년 남가주 한인회 창립 초대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이 여사는 대한인국민회 총회장과 대한 여자애국단 총부단장도 역임했다. 독립운동과 새 이민사회의 가교 역할을 맡으면서 남성 이상의 일을 많이 한 여성 지도자이자 한인사회의 원로다. 그는 1997년 향년 99세로 별세했다.  
 
애국심 불러일으켰던 여성 목사
 


이 여사는 평양여자신학교를 졸업한 뒤 1930년대 서문밖교회에서 여성 목사로서 활동했다. 당시 여자가 목사를 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이 교회에서 이 여사는 11년 동안 목회자로 일했다.  
 
이 여사의 설교가 힘이 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많은 교인이 교회에 몰려들었다. 그는 당시 부흥회에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설교를 했다고 한다.  
 
독립운동하다 감옥살이
 
이 여사가 21살 때인 1919년 3.1만세사건 때에는 전단을 배포하며 아리따운 나이에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이로 인해일본 경찰에게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3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최초의 여성 장로
 
숭실대 학생이던 이선두씨와 1918년에 결혼한 뒤 남편은 1920년 10월 신도 학생으로 먼저 미국에 유학을 갔다.  이후 1939년 7월, 당시 41세였던 이 여사는 교회에서 휴가를 받고 19년을 떨어져 지낸 남편을 만나러 미국에 왔다가 한국에 돌아가려고 할 때쯤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귀국을 포기했다.  
 
이 여사는 미주에 세워진 세 번째 한인 교회이자 미국 내 최초의 한인 장로 교회인 제퍼슨 장로교회(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에서 최초의 여성 장로를 지냈다.
 
한인회 첫 여성 이사장
 
이 여사는 1940년부터 흥사단과 국민회에 가입했고 1941년에는 애국단에 참여했다. 이 여사는 한국전쟁 때에는 도산 안창호의 부인과 함께 구호물자를 거둬서 한국에 보내는 일에 전념했다. 그 후에는 유학생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으로 한국 전쟁 후에 온 이들을 위해 크게 관심을 가졌는데 그것이 남가주 한인회에 참여한 동기 중 하나였다.  
 
1950년부터 1960년까지 애국단 총부단장을 3번 역임했고 1969년에는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으로 임명됐다. 1965년에는 남가주 한인회 이사로 시작해 1966~67년 한인회 첫 여성 이사장으로 이민 사회를 위해 봉사했다.  
 
그뿐만 아니라 1973년 한인회관 건립위원회가 조성됐을 때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생전에 “나는 교회와 한인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교포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가장 보람이 컸다”는 말을 남겼다. 

장수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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