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목 한인회 첫 여성 이사장 “교회와 한인회는 내 인생의 전부”
독립운동가와 목회자로 한평생
도미 후 반세기 한인사회 봉사
초기 한인회관 건립에도 공헌
이화목 여사는 LA한인회의 전신인 남가주 한인회의 최초 여성 이사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1965년 남가주 한인회 창립 초대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이 여사는 대한인국민회 총회장과 대한 여자애국단 총부단장도 역임했다. 독립운동과 새 이민사회의 가교 역할을 맡으면서 남성 이상의 일을 많이 한 여성 지도자이자 한인사회의 원로다. 그는 1997년 향년 99세로 별세했다.
▶ 애국심 불러일으켰던 여성 목사
이 여사는 평양여자신학교를 졸업한 뒤 1930년대 서문밖교회에서 여성 목사로서 활동했다. 당시 여자가 목사를 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이 교회에서 이 여사는 11년 동안 목회자로 일했다.
이 여사의 설교가 힘이 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많은 교인이 교회에 몰려들었다. 그는 당시 부흥회에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설교를 했다고 한다.
▶ 독립운동하다 감옥살이
이 여사가 21살 때인 1919년 3.1만세사건 때에는 전단을 배포하며 아리따운 나이에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이로 인해일본 경찰에게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3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 최초의 여성 장로
숭실대 학생이던 이선두씨와 1918년에 결혼한 뒤 남편은 1920년 10월 신도 학생으로 먼저 미국에 유학을 갔다. 이후 1939년 7월, 당시 41세였던 이 여사는 교회에서 휴가를 받고 19년을 떨어져 지낸 남편을 만나러 미국에 왔다가 한국에 돌아가려고 할 때쯤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귀국을 포기했다.
이 여사는 미주에 세워진 세 번째 한인 교회이자 미국 내 최초의 한인 장로 교회인 제퍼슨 장로교회(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에서 최초의 여성 장로를 지냈다.
▶ 한인회 첫 여성 이사장
이 여사는 1940년부터 흥사단과 국민회에 가입했고 1941년에는 애국단에 참여했다. 이 여사는 한국전쟁 때에는 도산 안창호의 부인과 함께 구호물자를 거둬서 한국에 보내는 일에 전념했다. 그 후에는 유학생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으로 한국 전쟁 후에 온 이들을 위해 크게 관심을 가졌는데 그것이 남가주 한인회에 참여한 동기 중 하나였다.
1950년부터 1960년까지 애국단 총부단장을 3번 역임했고 1969년에는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으로 임명됐다. 1965년에는 남가주 한인회 이사로 시작해 1966~67년 한인회 첫 여성 이사장으로 이민 사회를 위해 봉사했다.
그뿐만 아니라 1973년 한인회관 건립위원회가 조성됐을 때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생전에 “나는 교회와 한인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교포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가장 보람이 컸다”는 말을 남겼다.
장수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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