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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나의 소중한 선생님

이기희

이기희

보물보다 소중한 게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이다. 부피나 무게로 따질 수 없다. 만질 수도, 화폭에 담을 수 없어도 기억의 창고 속에 마른 꽃잎의 그리움으로 남는다.
 
언제부터인가 리사가 달력이나 공책, 내 책상 캘린더에 ‘McFarland’라고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낙서인 줄 알고 내 달력에 장난치지 말라고 했다. 리사는 말을 참 잘 듣는다. 한 번 약속한 건 꼭 지킨다. 그런데도 그 이름을 집안 곳곳에 있는 빈 종이에 적었다. 바쁜 내 일상 때문에 리사의 낙서(?)는 한참 계속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은 수 없는 목숨을 앗아갔지만 가정과 가족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게 한다. 큰 도시로 화랑 옮겨 크게 한판 벌려 보겠다던 허황된(?) 꿈을 접고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타인에게로 향하던 인생의 나침반을 오롯이 나 자신과 가족을 위해 고정시키니 사는 게 간단해졌다. 재물과 욕망, 권력과 명예의 헛된 망상의 뿌리를 자르니 사는 것이 편안해지고 리사와 눈 맞추고 즐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리사는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났다. 만 하루만에 막힌 십이지장 수술을 받아 생명를 건지고 일곱살 때 심장판막 재생수술을 받았다. 팬타곤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오하이오주로 온 것은 리사 교육 때문이다. Mongomery County는 특수교육이 선두를 달리는 곳이고 큰 도시보다 중소도시에서 리사를 키우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을 했다.  
 


리사는 18개월부터 특수교육을 받고 장애아를 일반 학교에 합류시키는 Main Stream으로 일반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노란색 졸업모자 쓴 리사에게 다정한 눈길로 허리 굽혀 졸업장 주는 교장선생님과 리사는 당당하게 악수했다. 옹기종기 놓인 가족 사진 중 리사 졸업사진은 우리집 가보 1호다. 늘 즐겁고 착한 리사의 행복지수는 만점이다  
 
리사는 내 수호천사다. 항상 내 곁을 지켜준다. 어릴 적엔 내가 리사를 지켰는데 지금은 리사가 날 보호해준다. 댕그랑 소리만 나도 “마미, 괜찮아?”라고 날 찿는다. ‘자라지 않는 아이’라는 내 글을 읽고 예전에 “지금은 힘들겠지만 리사가 곁에서 평생동안 지켜줄 거예요”라고 후배가 말했다. 애들이 각자 가정 꾸려 떠나간 빈 공터 같은 집에서 꽁무니 졸졸 따라 다니며 하루에 “사랑해”라고 백번은 더 종알거린다.
 
아! 이제는 리사가 ‘McFarland’이라고 집안 곳곳에 비밀처럼 적어둔 수수깨끼를 풀 시간이다. ‘맥 팔런’은 리사의 기억 속에 지울 수 없는 고등학교 선생님 이름이다. 리사는 “참 좋은 선생님이야. 정말 보고 싶어”라고 매일 그녀 이름을 부른다. 그동안 마음 속에 담아두고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몇 년 전부터 여러모로 수소문해도 은퇴한 뒤라서 연락이 닿지 않았는데 특수교육담당자 친구의 어머니가 비슷한 이름이라는 제보를 받고 첩보원처럼 수색작전 펴서 연락이 닿았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리사의 행복은 현재진행형이다. 식당 예약하고 고등학교 때 입었던 Centerville ELKS가 찍힌 티셔츠도 구입했다. 리사는 잠을 설치며 다음 주를 손꼽아 기다린다.  
 
연이은 교사들의 자살은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수치와 고마움, 옳고 그름을 가르치지 못하면 자식의 미래는 없다. 독불장군은 인생에서 패배한다. 사람이 사람을 키운다. 졸업식 때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라는 노래를 부를 때는 감격의 눈물이 핑 돌았다. 언제부터 배움의 터전이 이토록 사악해졌을까. 리사는 장애아로 태어났지만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돌봄으로 행복하게 자랐다. 스무해를 애타게 그리워하며 찿던, 리사 인생에 보석보다 더 빛나는 소중한 선생님! 당신이 있었기에 내 딸은 차별 없는 곳에서 사랑의 꽃을 피웠습니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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