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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바람이 갈비뼈 치고 달아나면

이기희

이기희

마음이 허하면 그 때가 그리워진다. 사는 것이 옹골차지 못하고 빈틈이 생기면 속이 빈 것처럼 허전해진다. 수목들은 한여름 찌는듯한 더위와 폭우에도 악다물고 잘 버텨냈다. 코발트빛 하늘 높이 뭉게구름이 목화꽃처럼 흩날리고 한줄기 스쳐가는 가을바람이 심장을 찌르고 달아난다. 며칠째 마음에 송송 구멍이 났다. 시나브로 떨어지는 마른 꽃잎에 울적해지고, 스쳐가는 그대 눈빛처럼 초록을 잃어가는 잎새들은 쓸쓸하다. 이유도 사연도 없이 그냥 잠시 시계를 멈추고 싶은 날. 안간힘 쓰며 헤어나려고 바둥대지 않고 ‘구름에 달 가듯이’ 살기로 한다. 천번 만번, 죽을 때까지 생각해도 답을 찿을 수 없는 생의 의미를 찿으려 애쓰지 않고 강물 따라 바다로 흘러갈 작정을 한다.  
 
유년의 바다에는 떠있는 지푸라기도 그립다. 망아지처럼 뛰놀던 날들, 그 시절에 먹었던 음식들이 생각난다. 마음이 공허해지면 무엇인가 채우고 싶어지는 것일까. 갈피없이 마음이 흔들리는 날엔 바싹하고 고소한 돈까스가 추억의 쟁반 위에 떠오른다.  
 
‘돈까스’는 나의 소울푸드(Soul food)다. 내 영혼의 동반자다. 건강식 먹는다고 보통 때는 안 해 먹지만 영혼의 돛단배가 밑바닥으로 가라앉을 징조가 보이면 서둘러 앞치마를 입는다. 양념에 살짝 잰 돼지고기에 밀가루로 옷 입히고 계란물 바른 뒤 빵가루 입혀 튀긴 뒤 새콤달콤한 소스 뿌리면 끝! 양배추 잘게 채쳐 곁들이면 생일 날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했던 경양식식당 음식이 부럽지 않다.  
 
사람은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해진다. 배가 부르면 만사가 든든해진다. 소울푸드는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다. 음식은 단지 생존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속에 추억과 사랑을 담고 있어 지친 삶의 원동력이 된다. 소울푸드는 상처 난 마음을 다독거려주고 살아갈 힘과 용기를 준다.  
 


영혼도 흔들리고 소리 없이 흐느낀다. 인생이 빠져나올 수 없는 덫이고, 덫에 걸려 덧없이 흘러간다 해도 ‘그 때가 참 좋았지’ 하는 때가 온다.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을 뒤로 하고 비 오는 날 창 밖을 무심히 바라보면 유년의 기억은 빗방울로 눈물로 흘러내린다,
 
우리 아이들 소울푸드는 양념 안 바르고 튀겨 소스에 찍어먹는 닭날개 요리다. 우리 동네에만 있는 식당이다. 도착하기 전 미리 주문해 첫 식사메뉴로 수십개씩 후다닥 먹어치운다. 아들은 엄마 상봉보다 치킨 먹고 싶어 집에 온다고 너스레를 떤다.  
 
소울푸드는 미국 남부에서 노예 제도를 통해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전통 요리의 총칭이다. 남부에서 형성된 미국 흑인들의 식문화는 20세기 초반에서 중반에 걸쳐 흑인들이 북부로 대거 이주해 미국 전역으로 전파된다. 흑인들의 식생활이 ‘소울 푸드’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은 1960년대인데 당시 흑인들의 문화에 ‘소울 음악’등 ‘Soul’이라는 단어가 유행한 것에서 유래한다.  
 
소울푸드는 어머니 젖가슴처럼 따스하고 감미롭다. 세월에 묻혀 얼굴은 잊어버려도 혀끝에 맴도는 유년의 촉감은 영원히 남는다. 나이 들어도, 늙어도 어릴 적 즐겨먹던 입맛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연어는 민물에서 태어난 뒤 바다로 나가 일생의 대부분을 보내지만 다시 민물로 돌아와 알을 낳는다. 숨겨둔 일기장 속의 연애편지 꺼내보듯, 혀끝에 맴도는 추억의 단맛은 세월을 비껴간다. 다시는 싱그러운 그 하늘로 돌아갈 수 없다 해도, 가을 바다 떠도는 황금빛 잎새에서 유년의 고소한 맛을 떠올리듯, 아이들이 맞이할 무궁한 세월 속에 영혼의 맛을 기억하기를. 바람이 갈비뼈 치고 달아나는 허전한 날들이 오면.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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