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미국 방문 귀국길이 어머니 마지막 여행"
40년전 공항에서 마지막 배웅
미국 초청 효도가 외려 불효
8년후 사할린 추락 바다 방문
"참사 잊혀가는 것 안타까워"
아들이 ‘미국 구경’ 시켜준다고 불렀으니 더없이 행복했다.
임원복(당시 60세)씨는 그렇게 한 달간 아들과 함께 지내며 웃고 또 웃었다.
김석형(76·롱아일랜드성결교회·사진) 원로목사는 40년 전 뉴욕 JFK공항에서 작별했던 어머니가 아직도 선하다. 임원복씨는 1983년 9월 1일 발생한 대한항공 007편 피격 사건의 희생자다.
김 목사는 3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개척교회 목사였다. 어머니는 평생 고생만 하다가 외국 여행 한번 못해 보고 환갑을 맞으셨다”며 “그때 나는 이민 생활 7년째였는데 뉴욕에서 하던 택시사업이 잘 풀려서 여유가 생기다 보니 미국 구경시켜드리려고 어머니를 초청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어머니와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부터 동부 지역 유명 관광 명소를 두루 돌아다녔다. 당시 김 목사는 30대 중반이었다. 자녀들도 어렸다.
김 목사는 “우리 애들도 그때 할머니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며 “어머니 손을 잡고 온종일 좋은 거 보러 다니고, 같이 밥 먹고, 웃고, 고생했던 이야기 나누다 울기도 하면서 한 달을 함께했다”고 전했다.
임원복씨는 신앙인이었다. 평생 새벽기도를 빼먹지 않았다. 미국 구경을 하면서도 틈틈이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다.
행복은 흐르는 시간도 잊게 했다. 어머니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1983년 8월 31일)이 됐다. 김 목사는 어머니를 모시고 JFK 공항으로 향했다. 그날 출국장 앞에서 어머니가 손을 잡고 한 당부가 유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김 목사는 “어머니가 내 손을 꼭 잡더니 ‘너 이제 하나님이랑 한 약속 지켜야 하지 않겠니’라고 하셨다”며 “그래서 ‘사업 조금 더 하다가 그렇게 하도록 할게요. 계속 기도해주세요’라고 답한 뒤 어머니를 꼭 안아주며 들여보낸 게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다.
다음날 새벽, 전화벨이 급히 울렸다. 한국에 있던 아버지(고 김희탁 목사)로부터 피격 소식을 처음 들었다. 날벼락 같은 소식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효도관광이 불효가 됐다는 자책감에 아버지에게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하염없이 울었다.
김 목사는 “그런 아버지는 오히려 나에게 ‘괜찮다’ 하시며 가장 좋은 때에 하나님이 데리고 가셨다고 위로해주셨다”며 “그때부터 어머니의 당부대로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피격 사건이 발생한 지 8년 후(1991년)였다. 김 목사는 선교를 위해 처음으로 러시아 땅을 밟았다. 그때 어머니가 묻혀 있을 사할린 섬의 바다도 방문했다.
김 목사는 “당시 사고 현장에 갔는데 일본인들을 비롯한 각국 희생자들의 유가족이 세워 둔 추모비가 있더라”며 “그때 한국에서는 그 사건이 잊히는 분위기였다. 40년이 지난 지금 피격 사건이 세월에 묻히는 것 역시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임원복씨의 남편 김희탁 목사는 이후 계속 목회 활동을 이어갔고 지난 2018년에 별세했다. 현재 김석형 목사는 3남매를 두고 있다. 첫째 딸(수미)과 둘째 아들(동진)도 목회자가 됐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