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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저터치] 응씨배 비사 <秘史>, 이토록 ‘환장할’ 승리라니

이른바 ‘환장하다짤’로 유명한 사진이다. ‘오픈카’ 탄 아저씨가 꽃다발 흔들며 환히 웃는 데, 플래카드 글자 중에 ‘환’과 ‘장하다’ 네 글자만 카메라 앵글에 들어와 ‘환장하다’는 문장을 완성했다.
 
이 사진은 한국 바둑계가 길이길이 기리는 승리를 증명한다. 사실상의 세계 최초 국제 바둑대회이자 세계 최고 권위의 바둑대회 초대 챔피언이 조훈현 9단이라는 역사를 소환하기 때문이다.  
 
그 시절 한국은 세계 바둑의 변방이었다. 응씨배 주최 측이 세계 16강을 초청했는데, 한국은 조훈현 한 명만 불렀다. 프로 바둑기사가 없는 미국과 호주도 한 명씩 초청했으니 한국 바둑계에겐 이만한 수모도 없었다. 그 모욕의 현장에서 조훈현은 일본·대만·중국의 일인자를 차례로 무찌르고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제1회 응씨배 결승 5번기 최종국에서 중국 바둑 영웅 녜웨이핑 9단의 패배가 확정됐을 때, 응씨배 창시자 잉창치(應昌期) 선생이 대회장을 나가버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중국인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거금을 들여 잔칫상을 차렸더니 변방의 한국인이 엎어버린 꼴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TV 드라마 ‘미생’의 원작을 보셨는지. 원작 만화책을 펼치면 기보부터 나온다. 그 기보의 출처가 바로 이 대국이다.
 
1988년 대회를 시작할 때 응씨배 상금은 40만 달러였다. 현재 환율로 약 5억3600만원. 당시 US오픈 골프대회 우승 상금의 두 배가 넘었다. 그러나 응씨배 상금은 더 오르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전해오는데, 가장 유력한 이유가 한국 선수의 ‘지나친 선전’이다. 특히 1회부터 4회까지 16년간 응씨배는 한국 천하였다.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을 거쳐 이창호가 왕관을 물려받았다. 대회를 치르는 족족 한국이 우승 상금을 쓸어가니 응씨배 주최 측은 ‘환장할’ 노릇이었을 테다.
 
한 달쯤 뒤 중국 항저우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바둑은 금메달 세 개가 걸려있다. 남녀 단체전과 남자 개인전.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선 남녀 단체전과 혼성 개인전이 열렸었다. 종목이 바뀐 배경엔 중국의 나름 치밀한 계산이 있었다. 중국은 세계 여자바둑 최강자인 한국의 최정 9단이 두려워 혼성 개인전을 없앴다. 대신 2010년대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던 커제 9단을 믿고 남자 개인전을 신설했다. 그런데 작전이 꼬이고 말았다. 여자기사 일인자는 여전히 최정인데, 남자기사 일인자는 더이상 커제가 아니어서다.
 
신진서 9단이 제9회 응씨배에서 우승하며 ‘신진서 시대’를 열어젖혔다. 2020년대 들어 메이저 대회에서만 5번째 우승이다. 아시안게임을 앞둔 중국으로선 다시 ‘환장할’ 시간을 각오해야 할 듯하다.

손민호 / 한국 레저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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