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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초근목피 (草根木皮)

윤재현 전 연방공무원

윤재현 전 연방공무원

북한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먹지 못하면 단백질 결핍과 수분 축적으로 배가 붓는다. 뉴스를 통해 울기운도 없이 늘어져 있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실향민인 나는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생겼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곡물은 없어도 초근목피, 즉 풀뿌리와 나무껍질은 풍부했기 때문이다.
 
보리 타작 전 즉 ‘보릿고개’가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어느 집이나 쌀독이 거의 바닥나면 저녁에 죽을 쑤어먹었다. 묽은 죽을 두 사발씩 먹으면 배가 부르지만, 화장실 몇 번 다녀오면 다시 배가 고팠다. 아침에는 팥이나 녹두를 섞은 조밥을 먹는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고구마나 옥수수 같은 거친 음식은 먹었지만 굶지는 않았다.
 
뒷산에 가 나물을 뜯어왔다. 가장 흔한 나물이 찻잎과 비슷한 ‘혼잎’이다. 봄에 싹트는 풀은 할미꽃 같은 독초를 제외하고 모두 뜯어다 데쳐 먹었다. 그 가운데 개두릅과 참두릅은 고급 나물이다. 옛날 튀긴 참두릅은 임금님의 밥상에도 올랐다고 했다. 더덕도 인삼 못지않게 귀한 뿌리다. 나는 어디에 가면 더덕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 열 발자국 전에 더덕 냄새가 코를 찌른다.  
 
바다에서도 나물을 뜯어왔다. 개흙 바닥에 자라는 알파파와 비슷한 ‘행이’ 나물은 부드럽고 감칠맛이 있었다. 개흙에 사는 ‘칡바리’ 게는 너무 많고 맛이 없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바다에서 조개, 굴, 게, 새우를 잡아 오고, 집에서 기르는 닭과 달걀, 그리고 돼지 등은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나는 콩새 사냥을 해서 할머니를 즐겁게 해드렸다. 콩새는 블루 제이와 비슷한 크기의 새로 흔히 콩밭에 산다. 이 새를 우리는 ‘바보 새’라고 불렀다. 콩새 떼가 있는 앞에 먹이를 매달은 쥐덫을 놓고 몰이를 하면 그 대로  덫에 걸렸다.
 
한 해는 흉년으로 보릿고개가 일찍 왔다. 산에는 눈이 쌓여있고 바다는 꽁꽁 얼어붙었다. 아이들과 함께 동네 어귀에 아름다운 소나무에 낫을 대었다. 것 껍질을 벗긴 다음 낫 끝으로 사방 한 자 칼자국을 내고 위를 두 손으로 잡아당겨 벗겼다. 소나무 껍질을 물속에 담아 솔 냄새를 우려낸 다음 햇볕에 말렸다. 말린 껍질을 절구에 넣고 찌어서 가루를 만들었다. 통밀가루 사이에 소나무 가루를 넣고 시루떡을 만들었다. 송진 냄새가 나서 나는 먹지 않았다.  
 
북한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생긴다는 말은 초근목피도 없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나무와 낙엽은 모두 베고 긁어서 땔감으로 사용했다. 북한의 산은 거의 붉은 민둥산이 되었다.  
 
북한에 식량 원조를 하면 곧바로 군량미가 될 것이다. 굶어죽는 북한 동포를 도와줄 방법은 없을까?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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