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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잘못 들어선 길에서

오래전 일이다. 영어책을 술술 읽고 싶었다. 모르는 단어들도 많고 이해가 되지 않아 책을 들었다가는 놓고를 반복했다. 어떻게 하면 영어책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영어 연애 소설책을 집어 들었다. 단어를 찾지 않아도 책장이 술술 잘도 넘어갔다.  
 
요즈음도 영어 공부를 매일 한다. 공부에 흥미는 없지만, 미국에 사는 팔자려니 생각하고 꾸준히 한다. 지루하고 힘들어서 예전처럼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남녀 문제 상담을 유튜브에서 찾아 듣는다. 불륜 상담도 있다.
 
영어 자막을 켜 놓고 듣는다. 그럴듯한 문장은 아이폰 노트 스피커에 말한다. 발음을 확인하기 위해 카메라 오디오에 대고 녹음도 한다. 이런 방법으로 영어를 듣고, 읽으며, 말하고, 쓰기를 반복한다.  
 
불륜에 관한 상담을 듣다가 어릴 때 읽은 이솝 우화 ‘개와 그림자’가 떠올랐다.  
 


‘개 한 마리가 고기를 물고 냇물을 건너게 되었다. 그때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본 개는 자기가 물고 있는 고기보다 더 큰 고기 조각을 물고 가는 다른 개가 있다고 착각했다. 그 고깃덩이를 제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먹이를 향해 멍멍 짖어대었다. 개는 자기가 물고 있는 고깃덩이마저 떨구고 잃어버리는 이야기다.
 
굳이 가져다 붙이자면 옆에 있는 반려자의 가치는 별로라 생각하고 불륜으로 다른 상대를 탐할 때의 결과는 둘 다 잃을 수 있다. 물고 있던 싫증 나는 고기를 버리고 새롭고 싱싱한 고기로 배를 채우며 한동안은 즐길 수 있다. 우리는 우화 속의 개가 아니기에 불륜으로 인해 자식과 반려자의 고통이 본인에게 전달된다. 소중했던 사람들을 잃고 쓴맛을 볼 수 있다. 허상을 잡으려다 진짜를 잃어버리는 격이다.  
 
바람에 떠도는 구름을 잡은 듯 환상 속에서 미쳐 날뛰다, 어느 날 갑자기 허상이라고 깨달았을 땐 모두가 변해버린 후다. 꿈꾸던 삶은 잘못 들어선 길에서 이미 멀리 달아나 잡을 수가 없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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