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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읽기]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담이 남긴 궁금증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2009년 출범한 오바마 정부 앞에 중국은 공룡이 되어 나타났다. 9·11사태 이후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이 중국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 커졌다. 미국의 위치가 흔들릴 정도였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은 중국의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서 외교·군사 전략을 중동에서 아시아로 옮겼다. 소위 오바마의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전략이다. 백악관은 미국이 태평양 강국임을 선언하면서 우선 중국의 팽창을 지역에 묶어두기로 했다. 일본 내 미군 기지를 정비했고 호주에 해병대를 배치했으며, 필리핀 군사기지를 확장했다. 환태평양 12개국을 중국에 대항하는 체제로 묶었다.  
 
중국은 이를 냉전 방식의 중국 봉쇄로 이해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의 영토 주장을 강화하고 대만을 겨냥 ‘하나의 중국’원칙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러한 중국의 입장은 시진핑 체제가 되면서  더 강화됐다.    
 
중국을 지역에 묶어두기로 한 백악관과 국무부 내 전략가들의 공통점은 일본 중심주의자들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바이든 부통령의 보좌진은 커트 캠벨, 엘리 래트너, 제이크 설리번, 앤소니 블링컨, 제프리 프레스콧, 사만타 파워, 웬디 셔먼, 다니엘 럿셀 등이었다.    
 
오바마 정부 외교·안보팀의 ‘중국 묶어두기’ 전략 핵심 가운데 하나가 한·일 관계의 밀착이다. 일본에 대해서는 못할 것이 없었지만 한국은 사정이 달랐다.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묵인, 2002년 발생한 ‘미순·효순이 사건( 한국 여중생 2명이 미군 장갑차에 압사)’ 등으로 반미 감정이 남아있었고,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 바로 잡기 운동으로 한·일 관계도 껄끄러웠다. 양국은 일본군 강제 위안부, 강제 노역, 독도 영유권, 동해 표기 문제 등으로 갈등이 격화됐다.
 
일본은 지속된 경제 침체로 우파가 정권을 장악했다. 고이즈미에 이어 아베가 총리에 올랐다. 미국은 한·일 관계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바마 정부의 외교팀은 한국대사관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한·일 관계 개선 가능성을 타진했다.    
 
아베가 총리 복귀 후 워싱턴 방문을 앞두고 있을 무렵 미국의 ‘중국 압박·봉쇄 전략’ 실무 핵심인 웬디 셔먼 국무부 차관이 서울을 방문했다. 당시 셔먼 차관은 “과거의 적을 비난해서 값싼 박수를 얻고 있다”며 일본군강제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한국 정부와 국민을 비판했다. 아베의 워싱턴 방문과 한·미·일  3각 동맹이란 미국의 동북아 전략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셔먼의 이 발언은 한국은 물론 미주 한인사회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인들은 연방의회로 달려갔다. 한인들의 성화에 연방의원들은 국무부에 “미국에 인권을 앞서는 어떤 전략도 없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국무부도 진실에 기초한 과거사 정리 없이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밀착시키는 일이 가능하지 않다며 한 발 물러섰다.    
 
바이든의 외교·안보팀이 2021년 백악관으로 돌아왔다. 중국은 더 위협적으로 커졌다. 바이든은 대통령 선거 당시 동맹을 결속시켜 망가진 국제 사회 내 미국의 지도력을 회복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미국의 외교 전략을 위해 한국과 일본이 긴밀하게 협력하는 문제는 더 중요해졌다. 백악관엔 캠벨이, 국무부엔 셔먼이 다시 중심에 포진했다. 이들의 동북아 외교 전략 공통점은 일본을 중심으로 하고 한국을 달래 끌어들인다는 것이었다.  
 
 지난 4월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미국을 국빈 방문했다. 그리고 얼마 후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이 곧 물러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리고 바이든 정부에서 국무부 내 2인자로 등장했던 셔면 부장관은 지난달 사임했다. 셔먼 부장관의 사임과 관련 “우선 할 일은 했다는 선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담이 발표되었고, 회담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여러분, 내가 행복해 보인다면 그것은 정말로 행복하기 때문”이라며 회담 결과를 만족스러워했다.  
 
그런데 새 시대를 열었다는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담에서 역사적 사실인 강제위안부 문제, 강제 노역 문제, 독도 문제는 어떻게 돌파했는지 아무도 설명하지 않고 누구도 묻지 않는다.  
 
이런 의문을 갖는 필자가 이상한 것일까?   

김동석 / 한인유권자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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