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리뷰] ‘흙의 피카소’ 도예가 피터 불코스
도예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며 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예술이다. 도자기는 변하지 않고 따뜻하며 정직하고 순수하다. 흙을 사랑하는 마음, 자연을 포용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서 일게다.전세계 도예인들에게 존경과 흠모의 대상으로 영원히 기억될 ‘흙의 피카소’ 피터 불코스(Peter Voulkos)는 현대 미술의 잭슨 폴록과도 같은 존재다.
50년대 그의 분출하는 예술적 영감이 미국의 도예를 오늘날의 지위에 올려 놓았다. 불코스는 실용기물로서의 도자기에서 벗어나 흙을 순수 예술의 매개체로 삼고 인간 내면의 다양한 욕구와 갈망을 표현한 ‘미서부 흙의 혁명’을 주도한다.
그가 사용한 추상적 표현들은 아프리카 미술과 히피문화, LA의 자유분방한 환경과 더불어 흙의 잠재적 가능성을 실험하는 장이었다.
고려청자와 이조백자 사이에 위치한 ‘분청사기’는 일면 불코스의 혁명 정신과 맞닿아 있다. 청자의 우아함과는 다른 표현 양식이 개발됐고 보다 인간적인 질감으로 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인 분청사기는 우리 선조들의 자유 정신을 담고 있는 귀한 문화유산이다.
서부에서 일었던 흙의 혁명과 분청사기는 자유함을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인 공통점이 있다. 지금 이 두 가지 사조의 도예 작품들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도자기 그룹전 ‘제너레이션스 오브 클레이(Generations of Clay)’가 마침 풀러턴 머켄탤러 문화원에서 열리고 있다.
불코스와 그의 1대, 2대, 3대 제자들 18명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다. 한국과 미국 역사의 어느 한순간, 도공들에 의해 던져진 자유로움의 순간들과 만나는 시간이다.
전시회를 주관한 김영신 도예가는 불코스의 영향을 받은 작가 중 3대 제자 군에 속한다. 이번 전시회에는 그의 분청사기 6점이 전시된다. 김영신 작가는 한국 도자기의 전통의 틀 안에서 불코스가 주도했던 현대 도자기의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도예가다.
그의 작품에는 고뇌와 고통과 고독의 체취들이 느껴진다. 이민 초창기의 혼란과 상실의 시간이 그의 작품 세계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후 한국적인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면서 불코스를 만나게 되었고 서구의 현대적 감각과 자연스레 융화되는 과정을 거쳤다. 따뜻한 생명력과 포용력이 흙의 본질이라는 걸 깨달았다.
도예는 흙에 인간을 담아 빚어내는 일이다. 그래서 흙이 하나의 도자기로 완성되는 과정은 작가의 열정과 꿈과 욕망, 존재에 대한 숙고, 삶에 대한 사유들을 담아내는 작업일 것이다.
요즘의 이민문화 현장에서 자주 느끼게 되는 것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단순한 가치이다. 이번 전시회는 고려의 도공들과 서구의 도예가들이 만나는 자리이고, 김영신의 분청사기에 담긴 한국의 혼이 50년대 일었던 미서부에서의 ‘흙의 혁명’과 만나는 자리다. 전시회 한 공간에서 분청사기 6점이 도도하게 뿜어내는 자유함의 내음이 피터 불코스가 일생 추구했던 흙의 실험들과 만나는, 절대 흔하지 않은 전시회다.
김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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