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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헌책 낙서 수집광

책을 읽은 사람의 삶이 책과 연결되어 새로운 생각으로 나타날 때 책은 특별해진다. 그 생각이 또 다른 우연의 여행을 통해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가 전해질 때 책은 새로 태어난다. 흔적이 있는 책을 찾아 읽는 즐거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책은 다 같은 책이지만 세상에 똑같은 책은 없다. 책을 읽는 우리 각자의 삶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말을 하고 싶어서 헌책방에서 일하며 책을 쓴다.
 
윤성근 『헌책 낙서 수집광』
 
요 며칠 새 많은 책을 처분한 후 이런 책을 읽으려니 가슴이 쓰리다. 헌책방 주인인 저자는 헌책에 남겨진 다른 사람들의 메모를 들춰보다 이 책을 썼다. “책 속 흔적이라고 하는 것은 헌책에서만 찾을 수 있는 특별한 보물이다. 책이 가장 책다워질 때가 언제냐고 하는 질문을 받으면 읽은 사람의 이야기가 책에 남는 순간부터라고 말한다.”
 
애초 책 주인도 잊어버렸을 듯한 내밀한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령 기형도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의 첫 장에는 이런 메모가 있다. ‘1999. 12月 30日 구입. 갑자기 시가 읽고 싶었어. 엄마가 읽은 책에 표시해 놓은 것을 그대로 놔두고 읽을 만한 곳 찾아서 시 보렴.’ 엄마가 사서 읽고 군데군데 소감을 남겨 자식에게 주었던 책 같다. 예상대로 그 유명한 시구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질투는 나의 힘’)엔 형광펜 줄이 쳐 있다.
 
‘책은 산과 같아서 멀리서 보면 풍경이지만, 가까이 있을 땐 숲이고 그곳을 자주 걸으면 어느덧 길이 된다.’ 나는 저자의 이 문장에 밑줄을 쳤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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