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뮤즈, 신기루를 찿아서
소매가 치렁치렁한 검정색 이브닝 드레스, 얼굴을 반이나 가린 검은 안경.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한 홀리(오드리 헵번)가 크로아상과 종이컵에 커피를 들고 보석상 ‘티파니’ 앞에서 윈도우 쇼핑을 한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첫 장면은 뉴욕을 방문하는 전 세계 여성들이 한번쯤 흉내내는 명장면이다.
뉴욕의 아파트에 사는 홀리는 부유한 남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화려한 신분상승을 꿈꾼다. 같은 아파트로 이사 온 폴(조지 페퍼트)은 부자인 여인의 후원을 받으며 애인 노릇을 하는 가난한 작가다. 홀리는 폴과 달빛 은은한 밤의 낭만적인 서정과 인간적인 사랑을 나누지만 부와 부유층을 상징하는 보석상 ‘타파니’를 동경하며 꿈과 현실의 괴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폴은 창가에 걸터 앉아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자유분방한 홀리에게 마음을 빼앗기지만 그녀는 꿈 같은 상류사회의 삶을 동경한다. 감성적인 사랑 이야기지만 상류사회에 진입하기를 열망하는 이들의 욕망과 애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영화다.
‘달빛 흐르는, 1마일도 넘는 강을 언젠가 우아하게 건너갈 거야’ 헨리 맨시니가 작사한, 헵번이 직접 부른 주제가 ‘Moon River’의 아름답고 애잔한 곡조는 만인의 가슴을 파고드는 시대를 초월하는 애창곡이다.
은퇴 후 유니세프 대사로서 인권운동과 자선사업 활동에 참가해 제3세계 오지 마을에서 아이들을 껴안고 미소짓는 노년의 헵번이 보여준 모습은 젊을 적 미녀 이미지 못지않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지방시(Givenchy)가 디자인한 홀리가 입은 검정 드레스는 2006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8억 5천만원에 팔렸다. 수익금은 헵번의 뜻을 살려 빈민가 어린이들을 위한 자선단체에 기증된다.
오드리 헵번과 지방시는 40년간 소울메이트로 사랑과 우정을 나눈다. 헵번은 지방시가 다자인한 수많은 드레스를 영화와 실생활에서 입었다. 헵번과 지방시는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이자 후원자다. 뮤즈는 영감을 주는 존재다.
뮤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술과 학문의 여신이다. 춤과 노래, 음악, 연극, 문학에 능하고, 예술가들과 시인에게 영감과 재능을 불어넣는 예술의 여신이다.
오드리 햅번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지방시의 의상을 품에 안고 오랫동안 키스 하며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진다. 위베르 드 지방시도 헵번을 두고 혼자 돌아오는 내내 그녀의 의상들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쏟았다고 한다.
인간은 절망 속에서 신기루를 찿는다. 오아시스를 꿈꾸지 않으면 뜨거운 사막을 걸을 수 없다. 타인으로부터 비롯된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 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영혼의 지팡이가 되는 소울메이트가 있으면 인생길이 외롭지 않다. 절망을 견디게 하고 욕망의 찌꺼기를 걷어주는 뮤즈가 있으면, 평범하고 남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요술병에 몸을 숨긴 달콤한 사랑의 매듭을 풀 수 있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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