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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포(Pho) 식당에서 생긴 일

이리나 수필가

이리나 수필가

집 근처에 새로 오픈한 베트남 쌀국수집인 식당 포(Pho)에 갔다. 라임 색의 간판이 싱그러워 보였다. 보통 음식점에서는 가장 자신 있는 메뉴를 상단에 올려놓는다고 들어서, 메뉴판 맨 위에 있는 포 넘버 원을 세 식구가 주문하고 난 새우가 들어간 버미첼리(베트남식 쌀국수)를 시켰다. 우리 뒤로 한 두어 커플이 들어왔다.  
 
한눈에도 식당에서 처음 일한다는 느낌이 팍 들어온, 얼굴에 여드름이 성성한 청년이 주문을 받았다. 물도 즉시 갖다주고, 또 와서 뭐 필요한 것이 있냐고 묻는 등 서비스가 상당히 좋았다. 하지만 금방 나올 것 같던 우리 음식 대신 나중 사람들의 식사가 주방에서 먼저 나왔다.  
 
어찌 된 셈인가 궁금해하며 기다리는 우리에게, 직원은 내가 주문한 음식은 오늘 만들 수가 없다고 했다.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서 내 주문을 취소했다. 그 후로도 다른 사람의 오더는 계속 주방에서 나오는데 우리 음식은 나올 생각도 안 했다.  
 
하염없이 물만 마시는 우리를 보며 이젠 카운터에 있던 주인이 왔다. 식사를 주문했냐고 물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미안한 표정의 주인은 직원이 나의 오더를 취소하며 아예 우리 주문을 모두 취소했다고 말하며, 새로 일을 시작한 종업원이니 이해해달라고 했다. 제법 시간이 흘러 포 세 그릇이 나왔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직원은 계속 우리 주위를 서성였다.  
 


나도 저런 적이 있다. 대학교 다닐 때 뷔페에서 일을 했다. 처음 해보는 식당 일이었다. 아마 사흘째 되던 날인 것 같았다. 손님이 간 것으로 판단한 나는 그가 먹던 접시와 컵을 치웠다. 그런데 화장실에 갔다가 온 손님은 깨끗하게 치워진 테이블을 보며 황당해했다.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날로 해고당하는 줄로 생각한 나는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양쪽 팔에 미군 해병대의 타투가 가득한 중년의 그는, 사과하는 지배인에게 괜찮다고 하면서 다시 접시 가득 음식을 담아와서 식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당황해서 쩔쩔매는 나에게 2달러의 팁까지 주고 갔다. 아직도 그가 주고 갔던 팁보다, 별것 아닌 척하던 그의 고마운 행동이 기억난다.
 
가족의 식사가 끝나자 직원은 계산서를 보내왔고 남편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팁까지 두둑이 주고 나왔다. 내가 팁은 왜 줬냐고 하자 “그래도 일은 잘했잖아”라고 했다.  
 
이렇게 말하는 남편이 오늘은 나보다 쪼끔 나아 보였다. 그래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쓴 라임 한 방울이 텁텁한 포의 국물을 개운하게 하듯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다.  

이리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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