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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위기를 기회로 바꾼 여자들

작년 2월, 우크라이나의 신도시 디니프로에 폭탄이 쏟아졌다. 안드레이와 티아나 부부가 30년 살던 아파트 창문이 날아갔다. 폭격을 당한 날, 티아나는 도시를 떠나서 체코로, 다시 독일로 넘어왔다. 몇 주 동안 열 나라의 국경을 넘었다. 구호 본부가 연결해 주는 핀란드로 들어왔다.  
 
캠프에는 전쟁 난민이 득실거렸다. 아이가 딸린 여자들의 절박한 몸부림이 보였다. 현지 남자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티아나는 처음 며칠은 먹고 자고 걷기만 했다. 불현듯 한 생각이 떠올랐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 어떤 것도 그립지 않아.”  
 
두 아들은 성인이 되었고, 늙은 친정 부모를 돌보며, 관성으로 그냥 사는 삶이었다. 결혼은 문제가 없었지만, 읽은 책을 다시 읽는 듯했다. 개도 키워 보고, 집도 고쳐 보고, 여행도 가보고… 부부는 노력했지만, 티아나는 바람 새는 고무풍선 같은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마음을 팽팽하게 해주는 핀란드 남자와 로맨스가 시작되었다. 손톱도 발랐고 머리 손질도 했다.
 
5월 어느 날, 안드레이는 아내 티아나의 전화를 받았다. 안드레이는 약물 문제를 상담해 주는 심리치료사다. 지금은 일선에서 피폐해진 군인들의 정신 상태를 돌보고 있다. 그날도 일을 마치고 빈 아파트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이혼하고 싶어요.”  
 
순간 51살의 안드레이는 펄펄 끓는 물을 뒤집어쓰는 듯했다. ‘일시적 희롱일 거야, 정신 차리고 곧 돌아올 거야.’ 안드레이는 그녀와 헤어지던 날,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스쳤었다. 커리어 우먼으로 일하며 성실하게 살아온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어려서 만나서 뜨거운 사랑을 했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다. 안드레이가 같이 늙어가고 싶은 유일한 여자다. 전화가 온 지 석 달 후, 안드레이는 아내에게 전화했다. 대답이 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다는 것을. 이제 티아나가 버스 편으로 보낸 이혼 신청서를 판사가 허락만 하면 된다. 양육권도 재산 분쟁도 없다. 모든 것이 너무 간단했다. 안드레이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는 개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네가 나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이야.” 안드레이는 분노가 치밀었다. 자신에게, 러시아에게, 모든 것에게.
 
뉴욕타임스 기자 제프리 게틀맨은 2023년 7월 25자 신문에 ‘행복한 결혼 생활을 파괴한 전쟁’이란 제목으로 글을 기고했다. 안드레이와 티아나 부부를 각각 따로 인터뷰하면서, 가정이 없어진 우크라이나인의 현실을 심층 취재했다.  
 
남자의 허락 없이는 자녀들을 데리고 떠날 수가 없다는 나랏법 때문에 참고 살았던 여자들도 있었다. 문제 밖으로 나오니 비로소 문제가 보이기 시작하는 상황이다. 18세에서 60세 남자들에게 출국 금지령이 내렸고, 여자들은 낯선 곳에서 아이들과 살아야 하는 문제가 닥쳤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행복했던가? 파괴된 조국과 무뚝뚝한 남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여자들은 자신의 삶을 다시 평가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여자들의 이혼 신청서가 최근에 폭주했다고 한다. 다친 남자들만 남아 있는 우크라이나의 인구는 어찌 될 것인가? 전쟁을 겪고 있는 아이들은 어떻게 자랄 것인가?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김미연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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