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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블랙퍼스트 클럽

[신호철]

[신호철]

한국에 다녀온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아빠! 우리 토요일 아침마다 외식하기로 해요. 장소는 멀지 않은 곳에서 찿아볼게요. 한번 간 곳은 되도록 피하고 가능한 다른 분위기의 레스트랑을 찿기로 해요.” 바로 그 주 토요일 아침 7시 우리는 첫번째 모임을 가졌다. 멤버는 아들 마이크, 손자 티미, 아내, 그리고 나 네명이었다. 자꾸 감겨오는 눈을 비비며 찿아간 곳에서 우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3대가 어우러진 아침 식사였다. 아들은 비즈니스 이야기, 새로 이사 갈 집에 관한 이야기, 요즈음 부쩍 잦은 친구 부모님들의 부고 소식에 관한 이야기를 듣자 하니 아마도 이 모임을 생각하게 된 원인도 그것에 기인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이제 Elementary School에 입학하게 될 티미는 작년에 비해 키도 마음도 많이 자란듯 보였다. 태도도 의젓해졌고 말수도 많이 적어진 듯했다. 나는 노후에 다가올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집을 처분하고 Townhouse로 옮겨갈 몇 년 후의 일도 이야기했다. 그 말끝에 마이크는 자신이 이사 갈 집 근처로 이사올 것을 제안하며 함께 가까운 곳에 모여 살자고 했다. 그 집은 자기가 마련해 주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식사 모임은 어느 사이엔가 벌써 여섯번째를 지나고 있다. 우리는 매번 다른 곳을 찿아다녔다. 미국 레스토랑의 아침 메뉴는 비슷하여서 별 차이가 없는 듯 보였지만 그 장소만이 가지고 있는 맛과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한번은 Arlington Heights에 위치한 Southen American Style의 별 5개 식당을 찿아간 적이 있었다. 그곳의 음식은 다른 곳에서 찿을 수 없는 특이한 모양과 맛을 가지고 있었다. 소세지를 잘게 썰어 넣은 그레이비를 기름에 살짝 튀긴 비스켓에 소세지, 햄을 함께 큰 pot에 담아 나왔다. 그 뿐만 아니라 접시만한 큰 팬케익이 두장이나 나왔다. 두 사람이 먹고도 남을 만한 양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음식은 노예 해방 전 남부 흑인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었다.
 


흔히 가족을 우리는 식구(食口)라는 말로 사용해 왔다. 다시 말하자면 ‘함께 밥 먹는 입’이란 뜻이다. 우리에게는 가족이란 ‘한솥밥을 먹는 식사공동체’라는 뜻이 강하다. 그래서 남에게 자기 아내나 자식을 소개 할 때도 ‘우리 식구’란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한국에서의 밥상을 생각해보면 훈훈한 정이 흐른다. 찌개도 냄비에 담아 서로 떠서 먹고 반찬도 한곳에 담아 서로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다. 그런데 미국의 식탁은 절대 그렇지 않다. 자기가 사용한 포크나 스푼을 사용해 음식을 가져오지 않는다. 반드시 따로 준비된 포크나 스푼을 사용해 자신의 접시에 옮겨 담는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 하지만, 아직도 한국밥상에 정이 가는 건 아직 내 안에 한국인이라는 끈끈한 정서가 흐르기 때문이다.
 
나는 3세대가 만나는 블랙 퍼스트 모임이 계속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음식 취향도 틀리고, 대화 내용도 틀리지만 그 만남이 노년의 생활로 접어든 우리에게도, 한참 미국 생활의 주역으로 그 꿈을 펼쳐나갈 마이크에게도, 학교 생활에 첫 발을 디디며 성장하고 성숙해져 가야할 티미에게도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주고, 힘든 세상살이를 헤쳐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되길 바란다. 우리가 테이블에 앉을 때 옆 테이블에서 음식을 먹던 노부부는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우다 떠나는 우리를 향해 환한 미소와 함께 good luck!을 나즈막히 전해주었다. 우리도 엄지와 검지로 하트를 보내며 맑은 아침으로 걸어나왔다.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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