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맏딸 스토리 '엘리멘탈'…한인 작품 또 잭팟
피터 손 '엘리멘탈' 한국서 흥행
배우 스티븐 연의 '성난 사람들'
남우주연상 등 에미상13개 후보
"완성도 높은 이민자 서사 주목"
내년 1월로 예정된 제75회 에미상 시상식에선 한인 제작진이 대거 참여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이 11개 부문 13개 후보에 올랐다.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남우주연상, 이하 미니시리즈 부문), 이성진 감독(감독.작가상) 등이 후보에 지명됐다.
이처럼 해외 한인들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들이 최근 극장가.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서 잇따라 각광받고 있다. 한인 2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영화 ‘미나리’(2021)로 배우 윤여정이 아시아 최초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고, 재일교포 4대의 삶을 그린 애플TV 드라마 ‘파친코’(2022)가 방송계 퓰리처상으로 통하는 미국 피버디상을 받은 데 이어서다.
‘엘리멘탈’은 손 감독이 물·불.흙·바람 등 4원소가 함께 사는 상상의 세계에 1970년대 미국으로 이민 간 자신의 부모님 스토리를 녹여낸 작품이다. 유리 공예의 꿈을 감추고 아버지의 소원대로 가업인 식료품 가게를 물려받으려다 화병이 난 주인공 앰버는 ‘K-장녀’를 연상시킨다.
불 종족인 앰버의 아버지가 물 종족인 웨이드에게 뜨거운 석탄 과자를 먹게 하는 짓궂은 장면은 외국인인 손 감독 아내 가족이 매운 한국 음식을 맛봤을 때 경험을 되살린 장면이다. 이 작품이 한국에서 올해 흥행 4위에 오를 만큼 선전한 데는 이런 한국적 캐릭터에 대한 공감대가 뒷받침됐다.
올 4월 넷플릭스 글로벌 TV시리즈 3위에 오른 ‘성난 사람들’도 한인 이민자들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스티븐 연이 연기한 이민 2세 도급업자 대니 조는 모텔을 운영하다 망해 한국에 간 부모님을 다시 모셔오는 게 지상 과제다. 대니는 인생을 즐기며 살려는 동생에게 “정착할 때가 되면 참한 한국 여자를 데려오라”는 훈수를 둔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 ‘라이스 보이 슬립스’는 한인 캐나다 감독 앤소니 심이 ‘쌀 소년(Rice Boy)’이라는 놀림 속에 자란 자신의 유년기를 담아, ‘캐나다판 미나리’로 불린다.
5월 전주 국제영화제의 국제경쟁 초청작 ‘조용한 이주’는 덴마크 한인 입양아 출신 말레나 최 감독이 자신의 처지를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운석에 빗댄 독특한 작품이다.
해외 한인들의 생생한 삶과 고민을 이토록 다채롭게, 여러 작품으로 접하게 된 건 글로벌 대세로 떠오른 K-콘텐트의 인기가 한몫했다. 이에 더해 전문가들은 미국 주류 문화권에서 아시아계 급부상과 함께 존재감을 드러낸 이민 2, 3세 창작자들의 성장을 중요한 요인으로 꼽는다.
부산 국제영화제 박도신 프로그래머는 “한인 2, 3세의 작품이 영화제에 보이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이었는데,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면서 “이후 꾸준히 성숙한 결과물이 늘어나면서 최근 들어 주목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인 입양아·이민자에 관한 얘기도 독립·예술영화에 머물지 않고 주류 상업작품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미국 찜질방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한인 청년을 좇은 ‘스파나잇’(2017)의 앤드류 안 감독, 1992년 LA 폭동을 그린 ‘국’(2017)의 저스틴 전 감독은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보다 먼저 선댄스 영화제·필름인디펜던트 스피릿어워드 등에서 수상하며 상업작품 감독으로 발돋움했다.
저스틴 전 감독은 한인 입양아에 관한 영화 ‘푸른 호수’로 2021년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고, 같은 한인인 코고나다 감독과 공동 연출한 ‘파친코’도 같은 시기 선보이며 주류 감독 반열에 올라섰다. 앤드류 안 감독은 한인 주인공의 ‘드라이브웨이’(2019)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미국 좀비 드라마 ‘워킹데드’ 시리즈로 각인된 스티븐 연은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 등 출연작이 칸 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진출한 데 이어, ‘미나리’ ‘성난 사람들’ 등에서 한인 이민자를 연기하며 스타 파워를 얻게 됐다.
‘성난 사람들’의 감독·제작·극본을 맡은 이성진 작가는 마블의 ‘선더볼트’ 작가로 참여한다. ‘성난 사람들’로 가치를 인정받아 할리우드의 주류 상업영화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미국 차이나타운의 억척 아줌마(양쯔충)의 판타지 액션을 그려 글로벌 무대를 휩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성공 사례를 해외 한인 창작자들에게도 기대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나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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