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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몽상] 물과 불이 서로 사귈 때

불과 물과 흙과 공기.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라면 몰라도, 21세기에 이런 네 가지 원소로 세상이 이뤄져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애니메이션 같은 판타지의 세계에서라면 몰라도 말이다.
 
국내 극장가에서 500만 넘는 관객을 모은 ‘엘리멘탈’이 바로 그런 애니메이션이다. 네 원소가 마치 사람들처럼 살고 있는 도시에서 ‘불’에 속하는 앰버가 주인공이다. 앰버는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이 도시로 이주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이주민 2세대. 아버지가 맨손으로 시작해 일군 가게를 외동딸 앰버가 언젠가 물려받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하고 기대하는 바다.
 
문제는 그야말로 불같은 성격. 앰버는 손님들의 이런저런 요구에 아버지처럼 능숙하게 대처하는 대신 종종 불같이 화를 내며 폭발한다. 그러다 어느 날 대형 사고를 친다. 이를 수습하려다가 시청 공무원이자 물에 속하는 청년 웨이드와 엮이게 된다. 적대적 관계로 처음 만난 두 사람, 아니 원소는 점차 서로에게 이끌린다.
 
불과 물이라니, 상식적으로 상극 중에 상극이다. 서로 만나면 치명적이다. 불이 꺼지든 물이 끓어 기화하든 서로의 존재를 없애버릴 수도 있다. 게다가 불은 이 도시에서 다른 원소들과 어울리지 않고 특정 지역에 모여서 살아왔다. 암암리에 차별도 받았다. 어린 시절 앰버도 그런 경험이 있다. 이와 달리 물은 이 도시의 주류다.
 


한데 이런 설정이 낯설지만은 않다. 신분과 빈부의 차이에 더해 서로 첫인상부터 나빴던 두 주인공이 결국 사랑에 빠지는 건, 한국 로맨스 드라마에서도 자주 보아온 전개다. 흔히 비슷한 사람에게 끌린다고 하지만, 세상에 꼭 같은 사람은 없다. 차이를 넘어서는 것은 극적 로맨스의 필수 과정이나 다름없다.
 
이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게 그래서만은 아니다. 앰버는 웨이드와 만나면서 자신의 재능에 새로이 눈을 뜬다. 가게를 물려받는 것 이외에 다른 삶을 꿈꿔 본 적 없는 앰버는 혼란에 빠진다. 그는 부모의 헌신과 희생을 절감하며 자란 자녀, 그래서 부모에 반항하거나 기대를 저버리면 안 된다고 스스로 체화한 자녀다. 한국 사회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부모-자식 관계다.
 
눈에 띄는 건, 그렇다고 앰버가 엄청난 자기 확신 속에 새로운 인생을 추구하게 되는 건 아니란 점이다. 따지고 보면 젊은 날 아버지의 선택에 비하면, 앰버의 선택은 반항이라고 하기도 힘들다. 부모가 원하는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던 길에서 벗어나, 기존에 생각해 본 적 없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직접 타진해 보기 위해 조심스레 한 발을 떼는 정도에 가깝다. 돌아보면 우리도 그런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이 새롭기보다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후남 / 한국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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