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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넉넉한 가난

이정아 수필가

이정아 수필가

30대의 청맹과니로 철없던 아이 엄마와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50대의 고단한 엄마가 LA한인타운의 조그만 교회에서 만나 함께 성가대도 하고 식당 봉사도 하며 가까이 지냈다. 다운타운 봉제공장에서 재단 일을 하셨던 50대의 권사님은 좋은 솜씨로, 한국에서 딸네 집에 놀러 오신 내 친정엄마 옷도 만들어주셨다.
 
그러다가 서로 다른 곳으로 이사하고 섬기는 교회가 달라지자 소원해졌다. 살면서 가끔 생각났다. 중고등 학생이던 그 댁의 아이들이 많이 컸겠다 싶기도 하고. 이사하신 댁 정원에 있던 아름드리 아보카도 나무도 궁금했다. 바삐 사는 사이 어느새 33년의 세월이 지났다.
 
지난달 교회의 새 신자 환영회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알던 그 J권사님이 우리 교회의 새 신자로 등록하셨다며 소개가 된 것이다.
 
끌어안고 반가움의 눈물을 흘리신다. 우리 교회 가까운 시니어 아파트로 이사 오셨으며 80이 넘으셨단다. 나도 어느새 60대 중반이 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권사님 댁 장성한 두 아이는 가정을 꾸리고 잘 산다고 하신다.
 
얼마 전 교회에서 만난 권사님이 정성을 다해 쓰신 편지와 봉투를 주신다. 우리 아들아이가 네 살 때 밸런타인데이에 드린 빨간 초콜릿 장미를 기억하고 계셨다. 그걸 편지에 쓰셔서 정말 고마웠다고 아들아이에게 전해주라며 금일봉과 함께 주신다. 그걸 전해 받은 아들아이도 감동하고 어머니날 꽃다발을 만들어와 권사님과 감격스러운 해후를 했다.
 
그 이후로도 권사님은 따님이 구운 바나나 케이크도 가져오시고(우리 아이가 어렸을 때 잘 먹던 것이라며), 교회 바자회땐 반찬이며 김치를 사서 주시며 친정어머니처럼 우리 가족을 보살피신다. 엊그제는 교회에서 단체관광 다녀오실 때 받은 기념품을 또 나눠주신다. 어려서 아들아이가 ‘미국할머니’라고 불렀는데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대신 하늘이 우리 곁으로 보내주신 듯하다.
 
나도 주일날 교회에 가며 권사님을 생각해 무어라도 챙겨가게 되었다. 텃밭 채소나 과일, 간식 등을 가져가 친교실에서 만나 서로 교환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도 노인 아파트에서 홀로 사시는 분께 부담이 될 것 같아 “권사님 너무 무리 마세요” 했더니 정색을 하신다. 연금에다 자식들이 넉넉히 용돈을 준다시며 가난해 보여도 여유 있다고 웃으신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고 모두 남에게 후하진 않다.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지갑도 열리고 베풀게 되어 있다. 권사님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또 배운다. 남에게 줄 땐 먼저 주고 많이 주고 내가 가진 것 중 좋은 것으로 주자. 그리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모르니 우리 서로 잘 살아야 한다.

이정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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