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신기한 꽃, 부겐빌리아
언젠가 스페인을 다녀 온 친구가 특이한 꽃길 가로수에 반해 사진을 많이 찍어 왔다고 했었다. 나도 좋아하는 부겐빌리아 나무 이야기였다. 수년 전 고국의 성남 시장에서 화분에 담은 부겐빌리아 꽃 화분을 보고 내가 놀란 적이 떠오른다. 세상의 벼라 별 꽃들이 수입되어 들어와 한국 아파트의 베란다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나무도 오십년이 지난 고목이다.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전에 살던 집주인이 누구실까. 어떤 사연으로 이 아름다운 부겐빌리아 꽃나무들을 여러 그루 정원에 심어 놓았을까. 늘 궁금해 하며 나는 살고 있다. 또한 종종 나의 세 번째와 네 번째 수필집을 손에 든 사람들이 ‘부겐빌리아’가 무슨 뜻이냐며 물어오기에 난 이 글을 쓴다. 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온 특별한 나무, 부겐빌리아.나무를 돌보다가 팔뚝을 스친 나무의 가시들이 상처를 남겨주지만 나무에게 이발을 해주는 시간이 즐겁기만 하다.. 그런 후, 곱게 만발한 우산 모양의 꽃나무 사진을 요리조리 바라보며 사진을 찍어둔다. 물이 흐르는 대로 살다 보니 영감이 떠오르는 대로, 두 권의 수필집 표지에 그 예쁜 꽃나무가 모델이 되었다. 처음 책은 꽃잎이 한 개씩 날아가는 환상적 모양에 편집실의 디자이너와 꽃잎에 집중했다. 그래서 ‘꽃잎아’라는 제목이 붙었다. 하지만 태평양으로 오가는 전화와 이메일로 감수하느라 너무 지쳐버려 다시는 책을 내지 않겠다고 했는데, 남편이 출판비를 선물하겠다고 졸라서 네 번째를 또 출간했다. 그렇게 힘들게 완성된 표지를 딸에게 보여주니 고맙게도 꿈을 꾸는 동화책 분위기라며 호감 있는 평을 해주었다.
사실 오래전 현관에 있는 두 그루 나무 중 한그루는 뽑아버리고 다른 한그루는 한 가지만 남겨 기둥으로 키워 지붕처럼 만들었다. 마치 도공이 정성들여 그릇을 빚어내듯이 나도 그렇게 정원의 예술품으로 궁리하면서 가꾼다. 그동안 햇살을 보지 못했던 나무가 하늘과 가까워져서일까. 예쁜 꽃봉오리를 피워내기 시작했다. 집에 온 방문객마다 문 앞에 잠시 서서 고개를 위로 올려 쳐다본다. 무슨 꽃이냐며. 모두가 행복한 웃음꽃이 피워 오르는 얼굴이었다. 우리 집은 내가 즐겨 부르던 어릴 적 동요처럼 부겐빌리아 꽃 대궐이 된 것이다.
그러다 몇 해 후인가, 집 전체에 흰개미 약을 치게 되었는데 직원이 아마 나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준비작업으로 나는 잔가지들을 자르며 슬퍼했었다. 뜻밖에도 그 직원의 말과 달리 서서히 새싹이 돋아나며 다시 살아나 잘살고 있다. 묘하게 내 경우도 비록 허약하지만, 병원을 모르고 살아왔는데, 나이를 먹은 탓인지 가끔 오밤중에 응급실에 가곤 한다. 병원에 갈 적마다 집에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며 마음을 비우고 희망도 내려놓곤 했었다. 그래서인지 부겐빌리아 나무처럼 내주어진 일상에서 할 일을 하면서 사는 하루하루가 요즈음은 고맙고 신기하다.
우리집 꽃나무 종의 이름은 ‘하와이안 스카렛’이다. 원산지가 열대지방과 남아메리카인 꽃 이름의 역사도 매우 흥미롭다. 오래전 프랑스 해군 함장인 루이 앙투안 부겐빌리아의 이름을 기리기 위하여 붙여졌단다. 당시 함께 배를 타고 간 함장의 친구인 식물학자 커머컨이 발견한 꽃이었는데, 함장과 식물학자 간의 전설 같은 사나이들의 우정에 난 또 한 번 놀란다. 당시 여성은 탐험선에 타고 갈 수 없었단다. 하지만 지혜로웠던 함장은 역시 식물학자였던 친구의 애인도 남성으로 변장시켜 친구와 함께 승선을 시켰다고 한다. 이로 인해 두 식물학자는 훌륭한 일을 탐험 할 수 있었다. 남성으로 변장해 배를 타야했던 그 여성 식물학자도 훗날 세계 최초의 여성 탐험가로 역사에 이름이 기록되었다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위대한 세상의 존재감을 느낀다.
하얗고 작은 대롱 모양의 암술처럼 보이는 세 개의 꽃과 붉은 꽃받침 세 개가 모여 한 송이의 꽃으로 보이는 숨바꼭질 놀이 모양의 신령스러운 꽃, 부겐빌리아. 최근 집 정원에 수개월 내내 만발했던 꽃나무의 가지치기를 마쳤다. 꽃이 질 때면 자주 바닥을 쓸어야 하고 쓰레기통도 몇 개를 채워야 하니 귀찮은 나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나비 날개처럼 얇은 잎맥이 보이는 꽃잎들이 신기하다. 바라볼 적마다 삶의 용기와 사랑의 희망을 나에게 실어주는 꽃이라서 나는 또 부지런해져야 한다.
최미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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