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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별장, 둘만 남은 젊은 남녀…어파이어 (Afire)

‘어파이어’는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대표작 ‘트랜짓’(2018)과 ‘운디네’(2020)에 이은 파울라베어와의세 번째 협업이다. 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심사위원대상) 수상작. [Sideshow & Janus Films]

‘어파이어’는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대표작 ‘트랜짓’(2018)과 ‘운디네’(2020)에 이은 파울라베어와의세 번째 협업이다. 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심사위원대상) 수상작. [Sideshow & Janus Films]

개인의 심리나 영화 미학에 관심을 보이는 ‘베를린 학파’의 대표적 감독이면서도 사회 역사와 관련한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 온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사랑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페촐트 감독은 물, 흙, 불, 공기 같은 요소들을 활용한 사랑 이야기를 3부작으로 만들고 있다. 전작 ‘운디네’가 물을 주제로 한 신화를 모티브로 한 사랑 이야기라면 ‘어파이어’는 불의 이미지 안에서 만들어진 사랑 이야기다. 페촐트는 붉은 노을과 사랑, 그리고 동성애를 주제로 시나리오를 쓰다가 코로나에 걸려 격리되었던 동안 재난 상황에 갇힌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로 방향을 틀었다.  
 
성공적 데뷔작에 이은 두 번째 책을 준비 중인 젊은 작가 레온(토마스 슈베르트)은 친구 펠릭스(랑스톤위벨)와 함께 발트해 연안의 조용한 별장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두 번째 책 ‘클럽 샌드위치’를 마무리할 생각이다. 별장에는 비치가 호텔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나디아(파울라 베어)가 와 있고 그녀는 해상 구조원 데이비드(엔노트렙스)와 밤마다 관계를 맺고 있다. 글쓰기를 위한 조용한 장소를 원했던 레온에게 다소 혼란스러운 분위기, 그러나 세 남자와 한 여자는 그럭저럭 함께 어울리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펠릭스는 미술학교 지원을 위한 포폴리오 제출 마감 시간이 다가오지만 데이비드와의 유희에 빠져 있다. 나디아를눈여겨보고 있는 레온은, 술을 마시던 중 데이비드가 펠릭스에게 키스를 하는 불편한 장면에 이르자 마음이 더욱 복잡해진다. 레온의 출판사 에디터가 레온을 방문하고 나디아가 뛰어난 재능을 지닌 문학도임이 밝혀진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산불이 일어나면서 데이비드와 펠릭스가 불의의 죽음을 맞게 되고 레온과나디아 둘만 남게 된다.  
 
‘어파이어’는 20세기 독일의 격변과 병리 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에서 시작하는 페촐트의 전작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우선 주인공 레온을 ‘진부한’ 인물로 설정한 시도가 새롭다. 레온의 자의식은 그의 외모와 많은 관련이 있다. 날씬한 몸매의 펠릭스, 데이비드에 비해레온의 외모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까칠하고 신경질적인 성격, 침울한 색깔의 옷차림, 친구도 없을 것 같은 캐릭터 레온을 영화의 핵심 인물로 등장시키는 페촐트 감독의 의도는 무얼까?  
 
단호한 듯 보이지만 늘 불안한 레온은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긴장시킨다. 그는 남들의 대화에 무관심하며 자신의 주제에만 몰두해 있다. ‘어파이어’는 예술과 삶 모두에서 실수를 저지르고 실수로부터 삶에 대한 중요한 가치를 배우는 한 젊은 작가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작가다’라는 자만으로 작가를 ‘연기’하다 종국에는 홀로 남게 되는 쓸쓸하고 슬픈 영혼 레온을 통해 영화는 인간이 일에만 몰두할 수 없는 감성에 찬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김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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