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무엇이든지 자기가 되라
사람은 가까운 친구나 이웃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누구와 함께 하는 가에 따라 삶의 색깔이 달라진다.‘자기보다 훌륭하고 덕이 높고, 자기보다 잘난 사람, 그러한 사람들을 곁에 모아둘 줄 아는 사람, 여기 잠들다.’ 미국의 기업인이자 자선 사업가였던 앤드루 카네기의 묘비명이다. 언뜻 보면 내 얘기 같다. 운명처럼 내 곁엔 항상 나보다 잘난 친구나 이웃이 많기 때문이다. ‘운명처럼’ 이라고 말한 것은 내가 그들을 모은 것이 아니라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런 환경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많은 시간을 나와 공유한 네 명에 관해서 얘기하고 싶다. 첫 번째는 K다. 동네 소꿉친구로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같은 대학, 같은 과를 함께 다녔다. 그녀가 미국으로 유학 가기 전까지는 잠만 각자의 집에서 따로 잤지 온종일 붙어 지냈다. 그 친구는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공부도 잘하고 어려서는 달리기 선수였을 정도로 팔방미인이다. 인품도 훌륭하고 성격도 명랑해서 항상 잘 웃어 인기가 많다. 교수에 부유하기까지 하지만 겸손하고 신앙심도 너무 좋다. 결점을 찾아볼 수가 없다. 모든 걸 다 갖춘 그녀는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걸 느끼게 해 주는 친구다.
두 번째는 LA의 J 이다. J와는 중·고, 대학 동기인데 LA와서 다시 만나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됐다. 그 친구로 말하자면 인물이 너무 출중하다. 신문사에 다니던 친구 말에 의하면 그녀가 신문사에 인터뷰차 방문했을 때 기자들이 배우 김지미씨 보다도 예쁘다고 했단다. 다재다능하고 의욕과 자신감이 넘친다. 게다가 그녀의 저택은 영화에나 나오는 집 같았다. 실제로 그 집에서 영화도 많이 찍어 배트맨 하우스로 불리기도 했다. 그 시절 LA에서 그 친구와 남편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만큼 유명인사였다. 당시 그녀는 LA 유명 봉사단체의 이사장을 하며 나를 이사로 영입했다. 나는 이사로 자원봉사를 하며 많은 시간을 그녀와 함께했다. 그런데도 당당한 그녀 앞에만 서면 작아져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처럼 자신을 낮췄다. 여러 면으로 너무 잘난 친구다.
세 번째는 교회서 만난 Y이다. 타주에서 우리 교회로 새로 온 권사인데 우리 구역으로 배정되었다. 나이가 비슷하고 자주 만나다 보니 흉금을 터놓는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발레리나였다. 키가 크고 날씬하며 얼굴은 인형처럼 예쁘고 눈이 자동차 헤드라이트처럼 컸다. 그녀는 못 하는 게 없는 재주꾼이다. 특히 음식을 잘하고 그중에서도 케이크를 잘 만든다. 내가 먹어 본 케이크 중에 그녀가 만든 것이 가장 맛있을 정도로 감탄을 자아낸다. 신앙심도 좋아서 거의 매일 새벽예배에 참석한다. 찬양 율동을 지도하며 가끔 헌금 시간에 대원들과 함께 강대상에 오르니 교회애서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또래의 권사들이 모두 그녀와 친하기를 원했고 또 그녀가 잘 대해 주므로 많은 권사는 자신이 그녀와 제일 친한 줄로 알고 있다. 모나리자 미소처럼 헷갈리는 친구다.
네 번째는 S다. 친구는 아니고 부부가 함께 내 남편과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다. 최근 우리가 사는 용인으로 이사 와서 같은 아파트에 살며 가장 자주 만난다. 그녀는 오랜 기간 K방송국 9시 뉴스 앵커로 활약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왕비같이 품위 있는 얼굴로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S는 참 착하다. 얼굴에도 선하다고 쓰여 있다. 또한 검소하다.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사려 깊고 나보다도 어른스럽다. 퇴직 후 박사학위를 받아 교수로 재직하다가 최근에 은퇴했다. 신앙심이 좋아 왕년의 인기를 바탕으로 최근에는 여러 곳에서 간증도 하고 강연도 한다. 그만하면 교만할 만도 하건만 겸손하게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사랑을 베푼다. 배울 점이 많은 이웃이다.
“왜 이리 내 주변에는 잘난 사람이 많은 거지?” 할 정도로 내 곁에는 유난히 잘나고 훌륭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의 눈에 비친 나는 어떤 사람일까? 혹시 내가 그들에게서 강한 인상을 받듯이 나도 그들에게 호감을 주는 무엇이 있는 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우리는 크고 작은 일에서 수십 가지 방식으로 자신을 남들과 비교한다. 남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면 우쭐해져 자만심이 생긴다. 반면 나보다 잘났거나 잘나가는 사람들과 비교해 그들보다 못하다고 느낄 때는 열등감으로 자신감이 사라지고 질투심이 생긴다.
공자의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그럭저럭 괜찮지. 그런데 가난해도 즐거움을 잃지 않고 부유해도 예를 좋아하는 경우만은 못하다.” 공자의 말씀이다.
‘Be yourself(너 자신이 되라)’. 잘 알려진 문구다. 정원의 많은 꽃은 자신만의 독특한 향기와 각기 다른 모양과 빛깔을 뽐내며 한데 어우러져 살고 있다. 꽃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아름답듯이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신을 사랑하자.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인생을 즐기자.
찰리 채플린은 이렇게 말했다. “남의 흉내 내지 말라. 질투는 무지이며, 모방은 자살이다. 그대가 만일 언덕의 소나무가 되지 못한다면 산골짝 벼랑 밑의 한 송이 꽃이 되라. 무엇이든지 자기가 되라. 남의 것을 주워 모으는 카피 인생을 살지 말라.”
나답게 살려고 노력은 하지만 평범한 외모에 성격도 내성적인 나는 잘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공연히 주눅이 든다. 어느 친구는 유명한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한다. 하긴 나도 비슷한 수준의 사람이 가까이에 있는 것이 편하고 좋다. 하지만 나보다 잘난 사람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존경심이 앞서서 그들을 인정하고 존중해 준다. 그들의 장점을 배우며 부족한 면을 채우려 노력한다. 그들 앞에서 나를 낮추며 겸손을 배운다.
공자는 “선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향기로운 지초(芝草)와 난초(蘭草)가 있는 방 안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그 냄새를 맡지 못하니, 이는 곧 그 향기와 더불어 동화(同化)된 것” 이라고 했다. 나보다 훌륭하고 덕이 높고, 지초와 난초같이 잘난 사람들과 함께하며, 동화되어 나 또한 지란이 되기를 바란다.
배광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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