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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남자는 없다

세상의 반은 남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반은 여자입니다. 분명한 사실입니다. 음양의 조화라고도 합니다. 세상을 숫자로 표현하자면 1은 나이고, 2는 부부 또는 남녀이고, 3은 부모와 나입니다. 1은 주체적이고, 2는 상대적이고 조화로우며, 3은 안정적입니다. 2는 상대적이면서도 조화라는 말이 어울리는 관계입니다. 서로 다르기에 서로를 배려하며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을 살펴보면 이런 조화는 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말에는 죄가 없습니다. 말은 차별하고 구별 지으려는 세상의 모습을 담고 있을 뿐입니다.  
 
 사회언어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으로 유표와무표가 있습니다. 유표는 표시를 한다는 뜻입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특별히 표시하지 않아도 됩니다. ‘키 큰 외과 의사’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남자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의사는, 외과 의사는, 키가 큰 외과 의사는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의사는 그냥 남자일 거라는 믿음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고, 그것이 언어에 남아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여자 의사가 거의 없었던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여자 의사도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사라고 하면 남자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의사’라는 말이 그 증거입니다. ‘남의사’라는 말은 왠지 어색합니다. 이는 교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교수는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남교수는 좀 어색합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도 남자라는 말은 잘 안 붙입니다. 여중, 여고, 여대라는 말은 자연스럽지만 남중, 남고는 어색한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같은 이름의 여고와 남고가 있는 경우에는 남고라고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남고에 가보면 학교 이름에는 남자가 들어가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경희여고, 경희남고라는 말은 하지만, 용산남고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경희남자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모두 경희고를 졸업했다고 하고, 경희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모두 경희여고를 졸업했다고 말합니다. 이화여대를 이화대학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화여대가 익숙합니다.
 
 남자에 해당하는 말이 아예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남성을 중심으로 생활하기에 생긴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사모님의 반대말입니다. 사회 활동을 주로 남자가 하였던 시절에는 사모님만이 존재하였습니다. 선생님의 부인은 사모님이지만 선생님의 남편은 부를 말이 없습니다. 사장님의 부인은 사모님이지만 사장님의 남편은 뭐라고 해야 할지 당황스럽습니다. 사부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왠지 무술영화의 느낌이 나서 우스울 때가 많습니다. 바깥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표현이 고급스럽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실제로 대중화하지는 않았습니다.  
 


 대통령의 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영부인’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남편을 나타내는 말은 없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나라에는 대통령의 남편이 있은 적이 없어서 이런 고민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영어에서는 퍼스트 젠틀맨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퍼스트 레이디의 상대어로 만든 것입니다. ‘영남편’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니 우습네요. 갑자기 호남편이라는 단어도 생각이 나서 헛웃습니다. 우리나라 광역 단체장의 경우는 여성이 된 적이 없어서 부인만 익숙하지 남편은 어색합니다. 놀라운 일이지만 현재도 광역 단체장은 여성이 전무합니다. 기초단체장의 경우도 여성 비울이 매우 적다고 합니다.
 
우리말 단어에 남자에 해당하는 표현이 적은 것은 역설적으로 여성의 역할이 적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단어에도 남자에 해당하는 표현이 늘어나기 바랍니다. 균형이 맞추어지기 바라고, 어느 한쪽이 어색하지 않기 바랍니다. 그게 유표, 무표라는 언어학 용어가 보여주는 세상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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