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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만나 본 삶의 반경

정류장을 지나간 버스는 멈추지 않습니다
 
기다리는 20분도 금세 분화구속으로 사라집니다
 
기를 뽑고 달리는 차들이 멀어지고 다가오고
 
나의 한여름도 벗겨지는 오후 앞에 서 있습니다
 
 
 
지친 반경이 더 지나는 동안 시간은 점점 잠식되고
 
바늘구멍에 들어선 실핏줄도 옴짝달싹 못 하는데
 
마모된 세포는 지나간 것들만 빠르게 간추려내는
 
지금이 길 것 같은 짧은 오후입니다
 
 
 
기다림에서 더욱 더딘 것은 시간이지만 누군가의 이름도
 
생각나기 전 쉽게 달라붙는 상실의 아픔은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조바심 같은 것
 
늘어진 목은 휘고 아직도 생소한 길이 불안한 오후입니다  
 
 
 
놓치지 않으려 가슴 졸일 때 타들어 가던 쓸개도
 
어느 난간에 홀로 서서야 낡은 눈물이 시렸고
 
진액이 보태지는 열정을 사르며 몹시도 훌떡거리던 삶
 
버스가 올 거라는 기대 층에 살아있음을 올려놓고
 
빼 든 고개 쳐들다 어깻죽지가 휘는지도 몰랐지요
 
 
 
이젠 펴지지 않는 척추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감질나던 그 한창의 시절을 돌아보는데
 
불편한 것들이 삶의 요소이었음을 알고 나니
 
친구여 엇나간 세월이 따라와 두 다리 후들거릴 줄이야
 
만나 본 그 날 다들 A 성한 것이 옹색한 것은 매한가지
 
무게를 덜어내 줄 수 없는 아픔만 무거운 어깨동무였네  
 
 
 
그래요 힘든 세상에서 멋진 쇼를 창작하며
 
우린 열심히 살아왔지요
 
고쳐 쓸 수도 없는 모든 숨을 손에 쥐고

손정아 / 시인·롱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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