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깡통아파트
월세나 전세에 살아본 사람은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려면 내집 마련이 필수적이란 것을 절실하게 느낄 것이다. 요즘 한국 뉴스를 보면 깡통 아파트, 깡통 전셋집이란 말들이 종종 나온다. 깡통아파트는 분양 가격이나 경매 낙찰 가격보다 시세가 떨어진 아파트를, 깡통전셋집은 담보대출과 전세 보증금이 매매가를 웃도는 전세 집을 비유로 한 말이다. 요즘 한국은 인구 가 줄어 난리라는데 주택 구입난은 여전해 많은 사람이 주택 마련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그런데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내집 마련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고 한다.미국 남북전쟁 당시 존 하워드 페인의 시에 핸리 비숍이 곡을 붙인 ‘즐거운 나의 집(Home weet home)’이라는 노래는 남·북군 모두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다고 한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집 내 집 뿐이리’. 전선에서 병사들은 허공을 바라보며 얼마나 가족과 집이 그리웠을까. 세월이 흐르다 보니 금융시장은 발전하고 한국은 날이 갈수록 아파트 빌딩으로 숲을 이루고 있다.
딸이 거주하는 라스베이거스의 날씨는 한동안 계속 찌푸리고 심술궂은 바람만 불어대더니 오늘따라 짓궂진 녀석들은 온데간데없고 하늘은 유난히 파랗다. 엄마의 손을 악착같이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흔들어 대던 창문 너머 무성한 나뭇잎들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화성의 하늘은 빨간빛, 달의 하늘은 새까맣게 보이지만 지구의 공기를 형성하고 있는 질소와 산소가 특별한 비율로 되어있어 지구의 하늘은 파랗게 보인다고 한다. 창조주가 넉넉히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주셨으며 정밀하게 설계를 하신 것 같다
이곳 서머린 타운은 신기하게 창틀에 먼지를 볼 수가 없다. 길거리 가로수는 깨끗이 정리되어 있고 주택들이 그림처럼 건축되어 길을 걷다 보면 절로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나는 김포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 때 부친을 따라 잠시 만주 목단강에서 살다 1945년 8·15 광복 전 인천의 고향 땅으로 내려왔다. 그때 살던 집이 지붕은 양철로 덥힌 집이었다. 물론 모두 남의 집이다. 비가 오면 지붕에서 우당탕 전쟁이 일어난다. 깡통주택 하니까 자꾸만 어린 시절 그 집이 생각이 난다.
아마 7살 정도가 되었을 때로 추측이 된다. 그 당시야 전쟁의 폐허 속에 집 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천 수도곡산이란 데는 거의 판잣집으로 산을 덮었다. 나는 일제 강점기 때 지어놓은 다세대 주택에서도 살았다. 자다 보면 뒷집에서 벽을 치는 소리가 난다. 나도 벽을 냈다 친다. 그러면 상대편도 답장이 온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한테 핀잔을 들었다. 천장에서는 밤만 되면 쥐들의 향연을 벌이는 소리에 겁도 나고 잠을 못 잘 때도 있었다.
옷에 이도 많고 쥐도 많아 DDT도 뿌리고 학교에서는 쥐를 잡아 꼬리를 잘라 가지고 오라는 숙제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화장실이 공동이라는 것이다. 세대 수보다 절대적으로 화장실 숫자가 모자랐던 것이다. 아침이면 북새통을 이루며 또 다른 전쟁을 벌여야 한다. 화장실 문을 두드려 본다. “아직 멀었소? 빨리 나오시오.” 노크로 대답한다. “예, 아직 멀엇수다.” “아이고 빨리 좀 나오지. 나 급한데.” 혼자 중얼거리기도 한다. 급한 사람은 영 죽을 맛이다. 어른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전쟁 직후라 모든 것이 불편한 생활이었다. 우리들의 삶에 주거공간이 얼마나 중요한가, 깡통아파트를 만들어 사기를 쳐 서민들을 울리다니 참으로 인정도 없는 놈들이다. 정말 깡통 같은 놈들이다. 신혼부부 자동차 뒤에 깡통 인간으로 달아매고 시내 한 바퀴 돌아도 시원치 않을 놈들이다. 이런 부류의 사기꾼들 탓에 깡통주택이니, 깡통아파트니, 깡통전셋집이니 하는 희한한 말들이 나온 것 같다.
악질 임대인들이 세입자들로부터 수천억원의 전세금을 받은 후 대출금 등을 이용해 수천 채의 아파트를 신축하고 다시 현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전세계약을 맺은 후 세입자에게 피해를 주는 전세 사기 사건이 일어났다. 이런 딱한 일이 있나. 피해자들은 평생을 모은 돈으로 즐거운 나의 집을 마련하려는 꿈을 눈 깜짝할 사이에 날려버린 것이다.
인간은 욕심이 너무 많아 문제다. 부동산에 한이 맺힌 사람은 지구를 큼직하게 해서 땅 면적이 늘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가 10%만 더 커져도 중력이 커져서 물이 수증기로 증발하지 않아 물의 순환이 차단 되어 우리가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는 깡통아파트라니…. 돈도 좋지만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백인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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