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고문이란 이런거구나
모처럼 후배 한 분이 집을 개방한다기에 뭔 좋은 일이 있나 궁금했다. 역시나 엄청 투자해서 집을 리모델링했단다. 방도 하나 더 들이고 베란다 새로 공사해서 완전 새집처럼 꾸몄다는데 자랑하고 싶단다. 마음들이 귀엽다. 60대 중반인데도 뭔가 자랑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주문한 캐더링 만도 넉넉해 보이던데 갈비찜과 닭강정까지 추가해서 음식이 넘친다. 고깃값이 많이 올라 갈비찜 맛본지가 언젠지 잊었다. 기대하고 앞니로 덥석 물었다. 혀에 퍼지는 이 부드러운 고급진 맛. 살짝 한 입 만큼의 맛이 아니고 넓적한 갈비 전체가 혀를 자극한다. 이거 뭐지? 큰 덩어리가 입안 가득 자리한 것 같다. 씹을 수가 없잖아. 한 입만 잘라서 어금니로 보내 씹으려 했는데. 그냥 입을 벌린 채 입 밖으로 원위치시켰다. 작은 조각으로 분리가 불가능하다.
혀에 닿는 이 딱딱한 느낌이 불안하다. 밀린 얘기 나누려 비밀스레 층계 중간쯤에 자리한 10년 아래 이쁜이가 곁에 있다. 많은 후배 와이프 중 슬쩍 스며들기 시작한 한 명이다.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갈비와 함께 떨어져 나온 물체를 얼른 입안으로 다시 들이밀었다. 임플란트 2개를 심어 브릿지로 붙어 있는 6개짜리 위쪽 앞니 무리다. 모두 부러져 떨어졌다. 어금니가 온전하니 음식은 씹을 수 있지만 떨어져 나온 앞니들은 어딘가에 숨겨야 한다. 대화도 불가능, 먹기도 불가능 구석진 곳으로 숨어야 할 판. 결국 먹기를 포기하고 대강 분위기 맞추다 남편을 채근해서 귀가를 서두른다.
급하게 치과 진료를 약속하고 시작된 입안 공사가 생각보다 심각하다. 비용도 메가톤급에 기간도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한국의 벚꽃이 절절하게 그리워 봄맞이 여행도 계획되어 있는데 속수무책.
임플란트 여럿에 브릿지가 설계됨에 따라 임시로 맞춰 끼고 한국 여행을 실행했다. 중고교 동창 모임에, 친한 친구들 개인적 여행까지 생전 처음 느껴보는 흐드러진 벚꽃과의 만남이 유난스레 정겹다. 그리움이었나?
불편한 임시 의치로 식사가 자유롭지 못함에 계획된 여행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돌아와 수시로 심한 고문 의자에 앉는다. 유난히 마취에 약해 가슴 벌렁거림이 심해서 의사도 조심스레 충분한 양을 투약 못 하고 잇몸 수술이다, 뼈 이식 수술이다, 임플란트다, 혼신을 다한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을 피하고자 그냥 틀니로 하자 했다. 값도 훨 싸고 시간도 짧다. 베스트가 아니란다. 어렵게 인내한 뒤에는 내 치아 같이 편하고 먹는 즐거움을 오래 만끽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런 황당한 고문을 견디면서 제목을 알 수 없는 감사함이 마음을 덥힌다.
노기제 / 통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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