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오픈 업] 도움 요청은 부끄러운 일 아니다

수잔 정 소아정신과 전문의

수잔 정 소아정신과 전문의

십여년 전 미국 의과대학생들이 공부하는 정신과 교과서를 읽다 깜짝 놀란 내용이 있었다.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에 과거에는 간혹 리투아니아가 오르기도 했지만 지난 십여년 간은 한국이었다'는 내용이었다. 필자는 그때의 참담한 심정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필자가 좋아하는 의과대학 동기 내과 의사로부터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빨리 유튜브라도 시작해서 한국의 정신과 환자들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심한 우울증, 공황장애, 불면증 등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전문적인 정신과 치료를 조언하면 당사자는 물론 가족까지 화를 내며 거부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니 유튜브를 통해서라도 각종 정신질환에 대해 올바른 교육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벌써 5년 전 일이다.  하지만 유튜브는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했던 필자는 그냥 웃어넘겼다. 그런데 한국의 자살률은 연간 10만명 중 26명꼴로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높다.  
 
필자는 더 늦기 전에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드디어  2022년 9월 '수잔 정 마음 건강 열린 상담실'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정신과 의사에게 도움을 받으라고 권고한 필자의 친구 내과 의사에게 화를 냈다는 의사를 갈아치워 버리겠다고 위협했다는 어느 부모님 같은 분들을 위해서였다.
 
현재 필자가 진료하는 사무실을 찾는 한인 아동,청소년, 성인의 반 이상은 주의산만증 환자들이다. 많은 분이 우울과 불안, 학업, 결혼 생활 등에 대한 문제들을 동반하고 있다.  
 


주의산만증 환자의 지능은 일반인과 다름없다. 게다가 이들은 '상자 밖의 생각( out-of-box thinking)'을 할 수 있는 창조적인 능력이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주의산만증 유병률을 약 13% 가량 된다고 한다. 이는 세계인의 주의산만증 유병률이 7.5%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필자의 환자 가운데 학교에 술을 가져가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마시다 적발돼 정학 처분을 받은 9세 한인 소년이 있었다. 학교 측의 정신과 치료 요구로 필자를 찾은 그 소년은 진단 결과 주의산만증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소년의 아버지에게도 주의산만증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부자는 이런 사실을 몰랐다.  
 
소년의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였다. 그는 예민한 감정으로 인해 불안감을 느낄 때가 많았고 그때마다 술을 마셨다고 한다. 아이들의 두뇌에는 '거울 신경 세포(Mirror Neuron)'들이 있어서 부모 등 어른들의 행동을 따라 하는 특성이 있다. 9세 소년도 아버지의 행동을 따라 한 것이었다. 조절 능력이 부족해 느끼는 대로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이었다. 그 소년은 이후 약물치료 등에 잘 적응해 집중력과 감정 억제 능력을 키워 무사히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런데 만약 이 소년이  한국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국 국민의료 공단 기록에 의하면 진료 환자의 10%가 주의산만증 진단을 받았지만, 그중에 약물 치료를 받는 환자는 10%에 불과하다고 한다. 아마 치료를 받지 않은 나머지 90% 가운데 상당수는 대인 관계와 사회 적응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제대로 치료하지 않을 경우 알코올중독, 범죄, 자살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세계 인구 50명 중 한 명꼴이라는 양극성 질환 (조울증)도 신속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조증 증상이 일주일 이상 있었다면(병원에 임원하면 더 짧은 기간)이는 제1형이고, 약 4일간 경조증을 경험했다면 제2형 양극성질환으로 진단된다. 이 질환 환자의 자살 확률은 각각 28%, 33%로 높은 편이다.    
 
그런데 양극성 질환 환자들은 우울한 경우에만 전문가를 찾는 특징이 있다. 기분이 좋을 때는 하루 3시간의 수면만으로도 에너지가 넘친다. 하지만 이들은 판단력 손상으로  경제적 손실이나 불법적인 성적 행동 가능성으로 강제 입원이 필요할  때가 많다. 또 우울 증상 이외에 극심한 불안과 분노로 고통을 받고, 이를 잊기 위해서 술이나 마약에 중독되기 쉽다.
 
병의 정도가 심할수록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는 과대망상을 하게 되어 의사나 약물치료를 거부한다.  
 
이민자들의 자살률은 새로 정착한 나라가 아니라 떠나온 조국의 자살률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즉, 미주 한인의 자살률이 높은 것은 한국의 자살률이 높은 것의 영향이 크다.  
 
필자는 한민족의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어려서부터 과도한 음주의 위험성을 가르쳐야 한다. 둘째, 주의산만증이 의심된다면 가능한 한 빨리 진단을 받고,약물치료를 비롯한 심리적, 환경적,영적 치료를 해야 한다. 셋째, 양극성 질환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그리고 셀프-헬프 그룹(self-help group) 등을 통해 양극성 질환자들에게 자살만이 ‘도움을 요청하는(cry for help)’ 방법이 아님을 알려야 한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