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헌법은 색맹이다.
오래 전 “완득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이 구절이 생각났다. 주인공 소년 완득이는 꼽추 아버지에, 필리핀 어머니를 가진 문제아였다. 대한민국도 이미 백만이 넘는 외국인들이 함께 살고 있는 이민자들의 나라지만, 아직도 백인이나 한국 사람들을 우대하고, 동남아인들이나 중국동포를 무시하는 풍토가 남아 있다. 완득이는 처음에는 자신의 필리핀 어머니를 부끄러워하지만, 결국은 어머니를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소년으로 나온다.
1890년 루이지애나 주에서는 기차에 백인과 흑인이 서로 다른 열차에 타야만 하는 법이 통과되었다. 그러자 흑인 인권 운동단체에서는 이 법이 위헌이라고 여기고, 플레시라는 사람을 시켜서 이 법에 도전한다. 플레시는 증조부 한 사람이 흑인이었지만 나머지 모든 다른 조상은 백인이었기 때문에 1/8만 흑인이고 7/8은 백인이었던 사람이다. 그는 외관상으로는 백인이었다. 하지만 타 인종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백인으로 보지 않는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플레시는 이 법을 시험하기 위해서 일부러 백인 칸에 탔다. 하지만 이 정보를 미리 입수한 기차회사는 플레시에게 흑인 칸으로 이동하라고 요청한다. 플레시가 이 요청을 무시하자, 주 경찰은 그를 체포한다. 체포 된 플레시는 루이지애나 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기차에서 백인 칸과 흑인 칸을 나누게 한 루이지애나 주 법은 인종차별을 금지한 미국 헌법에 위배가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미국 대법원은 루이지애나 주의 손을 들어 준다. “Separate but equal”이라는 말은 바로 이 사건의 대법원 판결에서 나온 말이다. 백인과 흑인을 나누는 것은 단순한 “분리”이지 “차별”은 아니라는 말장난으로 미국 대법원의 9명의 대법원 판사 중 7명의 절대 다수가 루이지애나 주법이 미국 헌법을 위배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린다. 피부 색깔로 기차 좌석을 나눈 것은 잘못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눠놓은 기차 칸의 시설이나 설비가 백인 칸이나 흑인 칸이 모두 똑같으면 괜찮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사 한 사람이 개인적인 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이 판결에서 일곱 명의 다른 판사들과는 반대되는 의견을 유일하게 혼자 낸 사람이 있었으니, 이 사람이 바로 할랜이라는 대법원 판사다. 이 판사가 작성한 소수의견은 이렇다. “ 백인은 미국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인종이다. 그들은 위상이나, 성과나 교육이나 권력 면에서도 우위를 차지하는 인종이다. 그러므로 나는 백인들이 자신들이 물려받은 위대한 유산을 계속 유지하고, 헌법에 나타난 자유의 원칙이 계속 지켜지는 한 백인들의 우위는 계속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헌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나라에는 더 뛰어나거나, 우월하거나 지배적인 계급의 국민은 없다. 법 앞에 계급은 없다. 우리의 헌법은 흑과 백을 구분하지 않는 색맹인 것이다.”
기차 칸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했던 루이지애나 법이 잘못되었다고 여겼던 이 판사의 소수의견마저도 지금 읽어보면, 당시의 시대 상황이 얼마나 인종차별을 당연히 받아들였는지가 명확해진다. 아홉 명의 대법원 판사 중에 단 한 사람의 소수 의견에 불과했던 이 의견은 그 뒤 60년이 흘러서는 다수의견이 되었고, 오늘날 미국을 지탱하는 근간이 되고 있는 평등 사상을 대표하고 있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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