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칼럼] 미국인 모두가 자유로워 지려면
초등학교에서는 ‘컬러’에 대한 무감각을 훈련한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피부 컬러’다. 피부색만으로 사람과 문화를 판단하거나 그 특징에 대해 선입견을 갖지 말라는 의미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옐로우, 블랙, 화이트 등을 언급하면서 서로 ‘인종 차별주의자(racist)’라고 말하던 모습이 기억에 있다.
같은 맥락으로 영화배우 모건 프리먼은 차별을 없애려면 우리 스스로 인종을 구분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피부색을 구분 지어 정치, 경제, 문화, 종교를 연구하는 학문은 물론 피부색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사회적 풍토도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의 미국에서 그게 가능한 것일까. 우린 ‘피플 컬러 블라인드’가 될 수 있을까.
#어퍼머티브 액션
1961년 대통령 행정명령에서 처음 쓰기 시작한 이 표현은 60년 넘게 소수계 인종에 대한 특혜의 상징이 됐다. 출발선이 다르고 박해를 받았으니 혜택을 주자는 취지다. 진정한 평등을 위해 약자인 소수계에 더 많은 기회를 주자는 것인데 미국인들의 생각도 진화하고 있다고 한다. 퓨리서치가 지난해 12월 조사했더니 응답자 36%가 어퍼머티브를 좋다고 했지만, 29%는 나쁘다고 평가했다. 올해 봄에 조사한 내용에서는 대학 입학 과정에서도 인종적인 구분을 입학 사정에 반영하는 것에 무려 50%가 반대하고 있다. 필요하다는 주장은 33%에 불과했다. 이제 따로 특혜를 주지 않아도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지만 필요하다는 33%의 목소리 배경엔 무엇이 있을까. 이들에겐 아직 차별이 상존하다는 반증인가.
#차별의 온도 차이
로욜라 메리마운트대에서 엔젤리노들의 의견을 들어봤더니 팬데믹 이후 인종 간 차별이 개선됐다(18%)는 답변보다 비슷하다(51%)가 더 많았으며, 오히려 악화됐다는 답변도 30%에 달했다. 연구는 여러 인종 간의 간극도 함께 측정했는데 아시안들 13.2%만이 인종 관계가 개선됐다는 답변을 내놨다. 흑인은 21%, 백인은 19%, 라틴계는 18%가 같은 답을 했다. 아시안 중 나빠졌다는 답변은 무려 38%로 인종별 답변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팬데믹 이후 아시아계가 위협적인 상황에 놓인 것을 고려하면 당연한 답변 같아 보인다.
아시안 중에 한국인들을 따로 구분했더니 차별에 대한 민감도가 아시안 그룹 내 다른 민족에 비해 10~15%p 더 높았다. 인종 간 관계에 대해서는 9.6%가 개선됐다고 답했지만 악화했다는 답변이 무려 45%(타 아시아계 35%)에 달했다. 집을 구하거나 구직 상황에서도 차별을 경험했다고 주장한 비율이 더 높았다. 더 나아가 한인들은 아시안들 스스로 다른 인종을 차별하냐는 질문에 32%가 그렇다고 답해 다른 아시안 그룹의 평균인 20%에 비해 높았다.
최소한 두 가지는 명확해진다.
한인들은 다른 인종과 민족 그룹에 비해 차별에 민감하다. 차별을 더 받고 있다고 믿는다.
둘째로는 우리 스스로 다른 인종을 차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차별에 민감한 것은 민권에 대한 의식이 높다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반대로 남들을 차별하는 것은 어떤 심리일까. 아니면 처한 사회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우리는 입장과 태도를 달리하는 것일까.
주변에 보면 흑인과 라틴계 이웃들을 쉽게 여기는 한인을 종종 볼 수 있다. 또한 그들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지난한 투쟁과 외침으로 지금의 미국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들의 역사를 배우지 않고 그 어떤 자격과 위치에서 그들을 멸시할 수 있을까.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은 이렇게 말했다.
“이 땅의 모두가 자유로워질 때까지 그 어떤 미국인도 자유롭지 않다.”
이상적으로 들리겠지만 우리도 컬러 블라인드가 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이웃들도 우리를 인정해줄 것이다.
최인성 / 사회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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