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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입찬 정치

우리말은 감각에 대한 표현이 발달하였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촉각에 관한 표현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촉각에 해당하는 어휘를 떠올리면 어떤 게 있을까요? 부드럽다, 거칠다, 따갑다, 뜨겁다, 따뜻하다, 차갑다, 시원하다, 간지럽다, 얼얼하다 등이 줄줄이 떠오릅니다. 주로 우리의 피부나 혀가 느끼는 감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촉각은 때로 상대적인 느낌입니다. 사람에 따라 느끼는 게 다르다고나 할까요?
 
우리말 촉각 표현 중에서 제일 어색한 것은 ‘따뜻하다’입니다. 따뜻한 것과 뜨거운 것은 전혀 다른 감각인데 우리는 뜨거운 것을 따뜻하다고도 표현합니다. 대표적인 예는 ‘따뜻한 아메리카노’입니다. 영어에는 분명히 ‘hot’이라고 쓰여 있는데, 우리는 따뜻하다고 합니다. 따뜻한 줄 알고 마셨다가는 큰일 납니다. 엄청 뜨겁습니다. 아마도 원래는 몸을 데우기 위해서 마시던 따뜻한 차의 느낌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긴 뜨거운 것을 ‘시원하다’라고도 하니 따뜻하다는 약과인 셈입니다.
 
우리의 촉각은 우리의 모든 삶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모든 감각을 촉각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촉각이 가장 직접적인 감각이기에 느낌이 잘 전달되는 듯합니다.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는 감각보다 피부에 닿는 느낌이 훨씬 잘 다가옵니다. 그래서 우리말에는 ‘피부로 느끼다’는 표현도 있습니다. 생각만 하던 현실이 직접 다가올 때 피부로 느낀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몸이 아픈 것도 기본적으로는 촉각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보다는 가슴이 아프다가 더 쉽게 이해되었을 겁니다.
 
촉각은 수많은 공감각적 표현을 낳습니다. 특히 소리를 나타내는 표현을 촉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드러운 목소리, 거친 숨소리, 따뜻한 말 한마디는 소리의 느낌을 쉽게 보여줍니다. 굳이 공감각적이라고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 방식입니다. 한국인에게 공감각적 표현은 문학이 아니라 생활입니다.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쉽게 이해하고 표현합니다.
 


우리말 표현 중에는 이렇게 공감각적 표현이 굳어져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말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말이 ‘입찬소리’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따뜻한 게 정상입니다. 내 입김과 함께 나오기에 내 몸속의 열기를 담습니다. 대화 속에서 온기가 느껴지고, 서로 위로받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라는 표현도 특별한 수사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입찬소리는 비정상적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차갑게 느껴질 때는 언제일까요? 당연히 상대에 대한 비난이나 욕은 차갑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실제로 서늘한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소름이 끼친다는 말도 합니다. 찬 소리는 상처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말 ‘입찬소리’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남에게 입찬소리하면 그대로 내게 돌아온다는 교훈입니다. 그래서 무섭습니다. 우리말 입찬소리가 주로 쓰일 때는 남의 자식을 욕하는 장면입니다. 남의 자식을 함부로 욕하면 내 자식도 그렇게 된다는 말입니다. 남의 사정도 모르면서 함부로 멋대로 판단하고 욕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입으로 지은 업보(業報)를 불교에서는 구업(口業)이라고 합니다. 구업을 없애려면 남을 진심으로 칭찬하고 위로하여야 합니다. 그게 바로 따뜻한 말입니다.
 
요즘 우리에게 들려오는 입찬소리 중 제일 거친, 찬 소리는 정치인의 말입니다. 정치(政治)는 바르게[正] 사는 일이고, 나의 이익보다는 사회의 이익을 도모하는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뜻을 잃은 채 남을 모욕하고, 더러운 표현으로 비난합니다. 남이 낮아지면 자신이 높아질 줄 착각하는 겁니다. 아닙니다. 상대와 상관없이 내가 나쁜 것은 그냥 나쁜 겁니다. 요즘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정치인의 말이 한없이 가볍고 차갑습니다. 입찬소리는 모두 업보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두려워해야 합니다. 저 역시 오늘 저의 말이 입찬소리가 아닌지 다시 살펴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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