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사랑의 빚 갚기
좋은 일로 나가기에 우울한 소식은 감추기로 했으나 이곳의 친지들과 교우들께는 기도 부탁을 해 놓았다. 나는 마치 죽을 날짜 받아놓은 사람처럼 나름 계획을 세웠다. 이번엔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고 오리라.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르니 마지막만남이라 생각하고, 내가 꼭 식사 대접을 하자 생각했다. 그래야 그동안 진 사랑의 빚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미리 쓰는 유서처럼 최후의 만찬처럼 비장한 생각을 했다.
도착 즉시 점심엔 친정 동생들 부부와 저녁엔 여고 동창들과 만나고,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떠나오는 날까지 하루에 점심 저녁 두 번의 약속을 하였다. 되도록 숙소로 오시게 해서 숙소의 식당에서 만났다. 내가 움직이려면 하루에 한 번밖에 못 만날 것 같아 호텔로 오시게 하니 두 번의 미팅이 가능했다.
동생들, 동창들, 어릴 적 교회 친구들, 옛 동료 교사, 오랜 인연의 가족 같은 사이버 친구들을 차근차근 만났다. 그랬어도 꼭 뵙고 싶었던 어르신이나 인사드려야 할 교수님들은 이번엔 만나 뵙지 못하였다. 그분들께는 날 찾아오시라고 하면 결례인 까닭이다. 한 달 살기를 작정하고 와서 직접 찾아가 인사드려야 할 분들이다.
건강치 못한 사람이 여러 사람과 만난다며 바쁜 스케줄을 염려해 주신 분들이 많았다. 그랬어도 드려야 할 감사의 절반쯤만 하고 왔다. 나머지 인사는 내년에 나가게 되면 마저 드릴 것이다.
은혜를 갚는 일도 쉽지는 않은 일인 듯싶다. 사랑의 빚을 많이 지며 살았기에 갚기도 열심히 해야 한다. 생의 마감에 닥쳐 서둘러 하지 말고 그동안의 사랑을 헤아려보며 감사도 여유 있게 드릴 일이다.
이렇게 먼 이웃들도 챙겨야겠지만, 아울러 가장 가까운 이웃인 가족에게 당연하게 여겨 자칫 소홀했던 것도 감사가 아니었나 반성했다. 함께 사는 가족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은 먼 길을 와서 굳이 밥값을 내겠다니 의아해했다. 다 생각이 있었던 거다. 사랑의 빚 갚기 프로젝트였다.
간에 생긴 혹에 대한 소견은 만난 동창 중에 의사 친구와 교회 오빠들 중에 의사가 있어서, 그리고 페친의 부군이 의사여서 세 분께 검사 결과를 보이고 자문을 들은 바 크게 걱정할 혹은 아니라는 소견을 들어서 안심했다. 우리 몸속에 모르는 채로 평생 끼고 사는 혹이 있다나? 양성종양일 가능성이 크단다. 7월에 검사를 다시 하기로 했으나 한 시름 놓았다.
나보다 더 열심히 내 건강을 염려하며 기도해 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사랑의 빚 기도의 빚 또 쌓였다.
이정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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