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은 뭘까, 한인 1.5세 감독의 진지한 질문
패스트 라이브즈
(Past Lives)
그러나 노라는 해성과의 온라인 만남이 커리어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며 관계를 끊는다. 또다시 10년이 흐른다. 7년 전 동료 작가 아서와 결혼한 노라를 만나기 위해 해성이 뉴욕으로 날아온다. 두 사람은 며칠 동안 뉴욕 거리를 걸으며 서로의 삶에 대하여 진지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서는 해성이 노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불안감이 부부 사이를 불편하게 한다. 노라와 해성 사이에 우정 이상의 감정이 미묘하게 움직인다. 이미 20년 전 결혼할 사이라고 선언했던 해성과 노라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그들은 여전히 친구 사이인가.
캐나다 이민 1.5세 한인 감독 셀린 송의 데뷔작이다. 감독은 20년 전의 추억을 현재로 끌어와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두드려본다. 영화 내내 두 사람의 관계에 사랑을 보이는 듯, 보이지 않게 투영시킨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단편소설 같은 영화, 그러나 그 과정을 흥미롭게 표현하는 연출력이 신인 감독답지 않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이민자들의 삶을 뼛속 깊이 이해하는 이민 1.5세 작가의 경험에 바탕한 애틋한 이야기이다. 옷깃을 스쳐도 인연이라는 한국인들의 전통적 정서에 대한 꽤나 진지한 담론이다. 분명 노라가 결혼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를 만나야만 했던 해성과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한 노라 사이의 괴리감, 인연에 대한 집착, 열정 없는 설렘, 사랑일지도 모르는 화학작용이 두 배우의 연기 안에서 매끄럽고 깔끔하게 표현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노라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해성을 배웅한다. 우버가 도착하기 전, 두 사람이 길가에 서서 서로를 쳐다보기만 하는 5분여의 롱테이크. 키스 씬으로 가는 어색한 빌드업인 듯한 기대, 그러나 곧 우버가 도착하고 그냥 그렇게 헤어지는 두 사람. 노라와 해성의 인연은 이번 생에서는 사랑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긴 여운을 남김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지속한다. 관객의 상상 속에서.
김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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