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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고 민병수 변호사…'한인커뮤니티 사랑' 기여와 봉사로 실천

한인 법적 권익 옹호에 최선
'미주 한인의 날' 제정에 앞장
'한인 이름' 교명 탄생 이끌어
암투병중 선거구 단일화 독려

LA시의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민병수 변호사가 단일 선거구 필요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LA시의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민병수 변호사가 단일 선거구 필요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민 변호사는 1981년에 한인 커뮤니티를 대표해 백악관에 초청됐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부부와 함께 한 모습. [민병수 변호사 제공]

민 변호사는 1981년에 한인 커뮤니티를 대표해 백악관에 초청됐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부부와 함께 한 모습. [민병수 변호사 제공]

남가주 한인 커뮤니티의 대들보이자 맏형이 떠났다.  
 
1일 오전 향년 90세로 타계한 민병수 변호사는 최근 폐렴과 염증 등으로 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투병생활을 해왔지만 지난주부터 병세가 악화됐고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유족 측은 “평소 뜻에 따라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했다”고 밝혔다.  
 
민 변호사는 초대 교통부 장관이며 LA 1대 총영사였던 민희식(1895~1980년) 선생의 3남 2녀 중 차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3 때인 1948년 LA에 도착한 그는 라번 대학을 졸업해 교사로 일하면서 글렌데일 법학대학원을 졸업하고 1975년 변호사가 됐다.
 


한미변호사협회(KABA)를 창설하고 회장을 역임한 그는 지미 카터 대통령 때 민주당 대통령 자문위원을 지내는 동안 한인 커뮤니티의 각종 현안을 백악관에 직접 건의했다.  
 
LA폭동이 발생한 1992년 말 민 변호사는 KABA 산하 한인법률권익재단을 통해 피해를 입은 업주들을 대리해 시 정부에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2년 만에 마무리된 이 소송은 LA시가 피해 업소당 2만 달러의 손해배상 비용을 지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는데 당시 소송에 끝까지 남아 있던 한인 업주 10명이 배상금을 받아냈다. 이러한 결과는 민 변호사와 한인법률권익재단의 노력과 업주들의 지지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LA미주한인재단 이사장을 맡았던 2003년에는 LA시와 카운티, 캘리포니아주와 연방 정부가 1월 13일을 ‘미주 한인의 날’로 제정, 선포하는 데 기여했다. 그가 직접 작성한 미주 한인의 날 결의안은 지금도 매년 주 의회와 LA시, LA카운티 의회장에서 낭독되고 있다.  
 
남가주에 한인 이민선조들의 이름을 딴 공립학교가 3곳이나 탄생할 수 있던 것도 그의 공헌이다. 이는 2020년 본지의 특별 시리즈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통해 그의 삶을 통해 비친 한인사회 이야기를 남긴 그가 유일하게 자랑했던 프로젝트다.
 
민 변호사는 당시 LA통합교육구(LAUSD)가 학교 신축 붐을 타고 옥스퍼드와 2가에 신축된 초등학교 이름을 ‘찰스 H. 김 초등학교(Charles H. Kim Elementary School)’로 명명하는 프로젝트를 주도한 데 이어, 2009년에는 윌셔와 샤토가에 세워진 중학교 이름을 전쟁 영웅 김영옥 대령의 이름을 붙인 ‘김영옥 중학교(Young Oak Kim Academy)’로 명명하는 데 성공했다, 또 2013년에는 버몬트와 버질 애비뉴에 세운 의료 매그닛 초등학교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의사인 새미 리 박사의 이름을 붙인 ‘닥터 새미리 매그닛(Dr. Sammy Lee Magnet)’으로 만들었다.
 
한국인의 이름을 딴 초·중·고등학교를 미국에 세우는 건 명실공히 100년 앞을 내다본 교육 프로젝트다. 한인 이름을 명명한 학교가 줄줄이 탄생하자 타 아시안 커뮤니티도 한인 커뮤니티를 부러워했다.
 
2012년 4개 선거구로 쪼개진 LA한인타운을 단일화하는 캠페인이 진행될 때도 그가 있었다. 당시 암으로 안구를 적출한 지 1년도 채 안 된 시기였지만 민 변호사는 검은 안대를 착용하고 LA시 공청회에 참가해 단일화를 강력히 요구하는 발언을 남겼다.
 
약 50년간 한인 커뮤니티의 중심에 있었고 여러 방면에서 활동해 왔지만 스스로 “다수보다는 소수에 속한 사람이었다”며 아웃사이더를 자처했던 민 변호사는 2011년 안구 암으로 한쪽 눈을 적출한 후 다른 부위에도 암이 재발해 수차례 걸쳐 큰 수술과 방사선 치료 등을 받으면서도 커뮤니티를 위한 봉사 활동을 마다치 않았다.  
 
그의 마지막 봉사활동은 지난달 6일 한인변호사협회(KABA)와 LA센트럴라이온스클럽에서 ‘법의 날’을 맞아 한인타운에서 진행하는 무료 법률상담 세미나를 알리는 홍보 활동이었다. 그는 두 달 전쯤 다리에 발생한 염증으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홍보 요청에 아픈 다리를 끌고 참여했을 만큼 한인 커뮤니티를 사랑했다.  
 
유족 측은 장례 일정이 나오는 대로 추후공지할 예정이다.
 
▶연락:(213)447-5475 캐롤라인 심, (626)274-8311 캐롤 민
 
 

장연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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