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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거북한 호칭, 이상한 존댓말

장소현 시인, 극작가

장소현 시인, 극작가

살다 보니 엄청난 자식 부자가 되어 있어 참 황당하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 있으니 속수무책이다. 식당에서, 상점에서, 병원에서….여기저기서 아버님이라고 불리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버님이라고? 내가 언제 저런 자식이나 며느리를 두었나? 아무리 더듬어 봐도 기억이 없다.
 
나이 먹은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담은 존칭이라는데, 그런 존대어가 무차별적으로 난무하니, 듣는 사람은 전혀 고맙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거침없이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고약한 풍조는 한국에서 시작된 것인데, 태평양을 건너 한인사회에까지 전해진 것이다.
 
손님은 왕이기 때문에 존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인 모양이다. 물론 존댓말이 나쁜 것은 아니다. 사전의 설명은 이렇다. “존댓말은 이야기의 주체가 되는 인물이나 듣는 이들에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쓰는 언어 표현이다. 경어 또는 높임말이라고도 부른다. 자신보다 듣는 이가 나이가 더 많거나 높은 계급에 있는 경우나, 혹은 만난 지 서로 얼마 되지 않아 친분이 없는 경우 쓰게 된다.”
 
우리말의 존댓말은 참으로 어렵다. 글쟁이인 나도 모르는 것이 많아 부끄럽다. 젊은 세대의 존댓말 사용은 더 엉망이다. 요새는 요상한 존댓말도 당당하게 사용되고 있다. “고객님,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뜨거우시니 조심하세요. 오천 원 되시겠습니다.”
 
걱정스러운 큰 문제는 이런 존칭의 남용 때문에 인간관계와 친척 촌수가 이상하게 얽혀버리는 현실이다. 모르는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며 부모 자식 관계로 얽히고, 식당에 가면 이모님이 반긴다. 어중간한 사이의 남자는 삼촌이 된다.
 
그뿐이 아니다. 젊은 세대들은 남편을 오빠라고 부른다. 그 이전 세대에서는 아빠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았다. 아빠나 오빠와 같이 살며 식구를 늘리는 것을 전문용어로 ‘근친상간’이라고 부른다. 그러다 보니, 온 나라 전 국민의 촌수가 대단히 복잡다단해진다. 온 백성이 모두 친척이다.
 
사실 우리말의 호칭은 참 애매하고 무질서하다. 적당한 호칭이 없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그래서 촌수의 혼란이 생기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말은 대체로 주어도 생략된 데다가 맺고 끊음이 분명치 않은 경우가 많다.
 
존댓말도 까다롭기 그지없다. 한글은 세상에서 가장 발달한 존대법을 가지고 있다고 우리는 자랑한다. 하지만, 학자들은, 한국어는 존대법 이상으로 하대법도 세상에서 가장 발달한 언어라고 지적한다. 한국어 반말이 담고 있는 무례함과 폭력성은 대단하다는 이야기다. 지금 우리 삶의 현실에서 생생하게 드러나는 사실들이다.
 
한쪽에서는 “아버님, 커피 나오셨습니다. 뜨거우십니다. 조심하세요”라는 식의 얄궂은 과잉 존대어가 설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잔혹한 욕지거리가 거침없이 난무한다. 정치판의 막말과 거짓말은 이미 수위를 넘었고, 온라인 공간의 욕지거리 댓글은 차마 옮기기도 낯 뜨거울 지경이라고 한다. 양쪽 극단의 혼란이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이 같은 혼란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장의 주어는 ‘나는’이다)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過猶不及)는 옛 말씀이 새롭다. 우선, 촌수의 혼란부터 바로잡았으면 좋겠다. 남편을 아빠나 오빠라고 부르는 잘못된 버릇부터 고치자고 주장하고 싶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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