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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한인 가족 앗아간 총격범의 ‘피해자 역할극’

장수아 사회부 기자

장수아 사회부 기자

“내가 증오하는 인종의 여자와는 동침하지 않을 거야. 강간이 아니라면 말이지.” 지난 6일 텍사스 주 댈러스 교외 쇼핑몰에서 한인 가족 3명을 포함해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총격범 마우리시오 가르시아의 SNS에서 이런 여성 혐오 글이 다수 발견됐다. 정확한 범행 동기는 수사 중이지만 그는 백인 우월주의와 네오나치즘에 빠진 극단적 인종주의자일 뿐 아니라 여성 혐오도 심했던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가르시아는 자신을 ‘인셀(incel)’이라고 불렀다. 미 최대 유태인 단체인 반명예훼손연맹(ADL)은 인셀을 ‘낭만적이거나 성적 애착을 형성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에 대해 여성과 사회를 비난하는 젊은 이성애 남성’으로 정의하고 있다. 텍사스대학 연구팀도 인셀의 특징에 대해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다”며 “삶의 만족도는 낮은 반면,  우울, 불안, 외로움은 많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8년 연방수사국(FBI)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총기 난사범 가운데 정신질환자는 4명 중 1명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총격범이 돈·결혼·직업 등 평범한 고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한편, 자신을 불의의 피해자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체, 재산, 명예 등에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피해의식(victim mentality)’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피해의식은 실제 피해 발생 여부와는 관계가 적다. 전쟁이나 자연재해 피해자들이 트라우마는 가질 수 있지만, 피해의식을 갖는 경우는 드문 이유다.  
 


피해의식은 어떤 사건이 마음속 깊이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로 인해 어떤 내면적인 법칙을 형성하게 되었을 때 나타난다. 그래서 유사한 환경이나 상황, 조건이 갖춰진다는 생각이 들면, 자신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속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피해의식을 갖는 사람들의 특징으로 ▶자신을 피해자로 보이게 하고 동정의 대상이 되려고 노력함 ▶도움을 받지 못하면 좌절감을 느낌 ▶무의식적으로 사실을 조작함 ▶원치 않는 상황의 원인을 타인 탓으로 돌림 ▶자신의 삶이나 상황에 대한 개인적 책임을 부정하는 것 등을 꼽고 있다.
 
피해의식이 무서운 점은 본인이 가해자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잘못은 본인이 했음에도 피해자를 포함해 타인은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가해자 내지 잠재적인 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존재는 자신뿐이라 여긴다. 사이언스 저널리스트 존 호건은 피해의식이 강한 신념 및 집단의식과 만날 때 테러 같은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피해의식의 심리학’ 저자인 대체 의료 치료사 야이아 헤르프스트는 피해의식을 두고 ‘피해자 역할’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자신의 고통과 불행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음으로써 책임회피와 보상심리를 충족하려는 일종의 역할극이라는 것이다.  그는 피해의식은 영원히 정신적 미성년자로 머물게 한다고 지적했다.  
 
피해의식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본인이 피해의식에 둘러싸여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해야 한다. 본인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잃지 않아야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물론 본인이 불완전한 인간임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남들에게 그렇지 않은 척 위장하는 것보다 본인의 연약함을 용기 있게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자기 발전에 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방법이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생각해야 한다. 모든 고난 가운데는 배울만한 것들이 있다. 그저 한탄과 자기 연민으로 넘기느냐, 아니면 배울 점을 찾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냐는 인생의 다음 단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부정적인 사고의 바다에 스스로 빠져 허우적거리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피해자 가면을 움켜쥘수록 커지는 것은 좌절뿐이다. 피해자 역할극 놀이에서 벗어나자.  

장수아 /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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