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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안톤 체호프의 소설, 대 초원 - I

1888년에 발표된 체호프의 중편소설 ‘대초원(Steppe)’은 남부 러시아의 광활하고 황량한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여정을 9세 된 어린 소년의 눈으로 보고 느낀 순수한 여행기이다. 일련의 작고 독립적인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이야기는 소년과 저자의 두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다. 뜨거운 7월의 어느 날, 키예프에 있는 큰 학교에 입학하려는 예고 루슈카는 그의 삼촌과 은퇴한 신부와 함께 시장에 가지고 갈 양모를 마차에 가득 싣고 마부와 함께 집을 떠나는 장면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년은 길을 떠나면서 단조롭고 무료한 우크라이나의 광야 한가운데 ‘위시 위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풍차, 곡식의 낱알을 고르고 있는 헤론(heron)처럼 가늘고 긴 다리를 가진 젊은 처녀의 강인한 모습, 구름이 한가득 몰려왔다 곧 흐트러지곤 하는 수시로 변하는 하늘, 캄캄한 벌판, 별 아래 목재가 가득 쌓여있는 수레 등을 지나치면서 막막하게 펼쳐져 있는 대초원에 신비스러움을 느낀다.
 
“숲도, 높은 언덕도 없는 대 벌판에서 있는 포플러나무, 그는 무더운 여름, 겨울에는 서리와 눈보라, 어둠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무의미한 바람의 울부짖음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가을의 끔찍한 밤, 그리고 가장 최악의 경우 평생 혼자이다. 그 사랑스러운 생물은 행복했을까? 신만이 그 이유를 알 것이다.” 소년은 외로운 포플러를 식별했다. 나도 생각에 잠긴다. 텅 빈 벌판이 내다보이고 묘한 슬픔에 젖어 든다.
 
대초원의 신비스러움 이외에 특히 인상 깊게 다가왔던 부분은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덜커덩덜커덩 삐거덕삐거덕’ 거리는 낡은 마차, 그 뒤꽁무니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넝마 같은 가죽끈에 대한 이야기였다. 체호프는 그 가죽끈을 “애처로운 가죽끈!”이라 불렀다. 수백만년이 흐른다 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그 가죽끈을 눈여겨본, 무섭도록 예리한 그의 관찰력, 무엇보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에, 특히 사랑받지 못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애처로운 것에 우리의 동정을 구하고 있다. 그는 연금술사처럼 진부한 것을 변형시킬 수 있다고 문학비평가들은 말한다.
 


러시아 문학강의에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그는 큰 문제를 다루지 않았으나 그의 산문은 플로베르처럼 시적이고 조이스의 작품만큼 심오한 통찰력을 갖고 있다. 그의 소설은 유머러스한 사람을 위한 슬픈 이야기들이다. 유머와 센스가 있는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창 젊은 나이가 아닌 중년을 훨씬 넘긴 이 나이에 그를 더 가까이 알게 된 것은 내 삶에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춘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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