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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부국 싱가포르의 교훈

청렴부국 싱가포르의 교훈  
 
김건흡
MDC시니어센터 회원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지하 (金芝河)시인이 쓴‘오적’이란 시가 있다. 반세기 전 , 당시의 썩은 세태를 날카롭게 풍자한 담시다.  시인은 이들 다섯 인물 유형의 한자 표기를 ‘개견(犬)’자(字)가 들어가는 새로운 조어로 표기함으로써 그들을 동물화했다. 당시‘오적’을 실은‘사상계’가 날개돋친 듯 팔릴 즈음 그 잡지는 판금돼 세상에서 사라졌다.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고급공무원, 장성, 장차인이라 이름하는,/ 간뗑이가 부어 남산만 하고 목 질기기는 동탁 배꼽 같은/ 천하 흉포 오적의 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 안에는 큰 황소 불알 만한 도둑보가 곁붙어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에 이르렀것다.


 
부패는 한국의 오랜 고질병이다. 자원이 많이 확보되어 공정하고 평등하게 나눌 형편이 되어도 탐욕스러운 부패는 멈추지 않는다. 공동의 힘으로 얻은 자원을 골고루 분배받기 위해서 무리에서 가장 현명하고 공정한 자를 뽑으려 한다. 음흉한 자는 탐욕을 숨기고 정직하고 유능한 사람처럼 행동해 구성원의 신뢰를 얻는다. 진짜 정직한 사람도 있지만, 본색을 숨긴 늑대 같은 자도 뽑힌다. 부패한 정치인들이 발 붙일 수 없는 세상은 끝내 이룰 수 없는 꿈일까. 아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그러면 먼저 제도를 바꿔라. 제도를 개혁하면 의식도 개혁된다. 먼저 의식을 개혁한, 깨어난 소수의 엘리트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제도를 개혁하면 국민의 의식도 자연스레 개혁된다. 그 가장 좋은 증거가 싱가포르다.  
 
싱가포르의 각종 경제자표는 세계 최정상급이다. 싱가포르의 2018년 구매력 기준 실질국민소득(GDP)은 10만 400달러로 카타르, 룩셈부르크에 이은 세계 3위다. 국가청렴지수는 덴마크, 뉴질랜드에 이은 세계3위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놀지 않는다’는 식으로 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부수적으로 부패도 심해지기 마련이라는 ‘인류사회  보편원칙(?)’을 깨고 싱가포르를 세계 3대 청렴부국으로 만든 비결은 무엇일까? 1960년 말레이시아연방에서 퇴출되며 국가 존망의 위기로 내몰렸던 싱가포르는 국가 안팎으로 상황이 악화되자 부정부패가 기승을 부렸고 회생할 수 있는 기회를 잃은 듯 보였다. 망해가는 국가를 살리기 위해 리콴유 총리가 내놓은 타개책은 바로 해외투자유치였다. 그러나 싱가포르라는 나라를 믿고 투자를 해줄 해외기업들이 있을 리 만무했다. 부정부패가 기승을 부리는 나라의 어두운 이미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리콴유 (李光耀)총리는 해외기업들이 싱가포르를 신뢰하고 자유롭게 무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과감하게 부정척결을 시작했다. 그는 “부패방지는 선택이 아니라 국가생존의 문제이다. 반부패정책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굴복시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반부패 제도화에 힘썼다. 그 결과 싱가포르를 세계에서 법 집행이 가장 강한 나라, 세계 3대 청정부국으로 만들었다. 그는 정치 후진국들의 정객들처럼 문화 탓, 관행 탓, 국민의식 탓만 하면서 낡고 썩은 법제는 놔둔 채 대안 없는 의식개혁이나 공허한 구호를 되뇌이지 않았다. 그는 법과 제도로 싱가포르 국민이 부패를 용납하지 않고 부패 고발을 잘 하도록 만들었다. 익명으로 부패 신고도 가능하도록 했다. 리 총리는 각종 정책을 구체적으로 법제화해 강력히 실행해나갔다. 그래도 개선이 안 되면 법과 제도를 집요하게 개선하고 업그레이드시켜나갔다. 그는 1960년 부패방지법을 제정하고 전담기관인 부패방지국에 강력한 수사권과 사법권을 부여했다. 또 뇌물을 받지 않았더라도 받을 의사가 있었거나 이에 따르는 처신을 했을 때에도 범죄가 성립되도록 했으며, 해외에서 뇌물을 받거나 비슷한 부정을 저질러도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부패방지국(CPIB)은 산천초목도 떨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부패방지국 청사 1층 로비에는 다음과 같은 3대 직무철칙이 게시돼 있다고 한다. 첫째, 아무도 면제되지 않는다. 둘째, 1센트의 부패도 묵과하지 않는다. 셋째 가혹하게 처벌한다. 부패방지국이 국가 청렴성 확보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이 기관에 부여된 막강한 조사권 때문이다. 부패방지국은 공직부정행위 뿐 아니라 민간부분의 부정행위까지 조사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부패방지법에서 정하는 범죄를 범한 자 또는 동일한 범죄를 범한 혐의가 있는 자를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
 
이와 병행하여 고발인이 고발사건의 민형사 재판 증인으로 설 수 없도록 보호조치를 취했다. 고발인이 고의로 허위신고를 했을 경우를 제외하곤 어떤 처벌도 받지 않도록 고발인 보호에 만전을 기했다. 또 내부고발자 보호법체제를 구축했다. 비리 정보를 폭로하는 전현직 공무원에 대한 보복이 금지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공무원의 부패 실상을 목격한 경우 반드시 고발할 것을 공무원의 의무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세계 최고수준의 공무원 보수를 자랑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공금을 착복하려 하거나 세금을 도둑질하려는 공직자가 있겠는가.  
 
그의 강한 의지는 부패방지법이 엄격하게 집행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뇌물을 실제 받지 않았어도 의도가 있었다면 처벌이 가능할 정도다. 싱가포르 공무원들은 가벼운 선물조차 값을 지불하고 받도록 교육받고 있으며, 매년 재산과 투자액 변동 사항을 신고하며 자신의 투명성을 증명해내고 있다. 이 같은 싱가포르의 투명성은 시민의식 수준을 제고시켰다. 정부의 강력한 부패척결 의지 덕분에 공직사회 뿐만 아니라 시민의식 수준도 자연스럽게 높아진 것이다. 사실 싱가포르는 경범죄에 대해서도 선처가 없는 나라로 유명하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침을 뱉거나 껌을 버리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바로 법 테두리 안에서  국민 모두가 질서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싱가포르는 ‘부정과 부패는 법과 제도로 반드시 척결할 수 있다’는 명제를 입증한 모범청정국가가 되었다.  
 
싱가포르를 청정국가로 만든 것은 리콴유를 비롯한 정치인들의 강철같은 의지였다. 실제 리콴유 총리는 자신의 친구였던  테체앙 건설교통부장관의 뇌물사건에 대해서조차 단호하게 대처했다. 테체앙 장관의 선처를 많은 이들이 탄원했지만, 그는 법대로 처리했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테체앙 장관은 이 총리에게 독대를 신청했다. 그러나 이 총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사에 관한 한 총리의 권한 밖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테체앙 장관은 그날 집에 돌아와 권총 자살했다.  테 장관 부인이 마지막으로‘부검은 말아달라’고  간청했지만 , 이 역시 자신의 권한 밖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슬픔에 잠긴 부인의 마지막 간청마저 거절해야 했던  리콴유의 인간적 고뇌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희생 속에서 싱가포르는 법과 원칙이 반듯하게 선 청렴국가로 우뚝 섰다.
 
물론 싱가포르는 작은 도시국가로서 한국의 여건과 다른 점이 많고, 집권당인 인민행동당(PAP)이 일당 지배적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개인의 자유에 대한 통제가 크다는 점에서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정치지도자와 공직사회의 청렴성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어 세계 최고의 국가경쟁력을 유지해 나가는 그들의 발전 전략에서 우리는 배워야 한다. 아직도 대한민국에서‘오적’이 활개 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민주당의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은 우리나라의 정치부패가 얼마나 고질적이고 뿌리 깊은지를 보여준 충격적인 사건이다. 정치부패 척결이야말로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최우선적 정치개혁과제임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현직 야당 최고위원이 방송에 나와 ‘밥값도 안 되는 돈’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선거 때마다 금품과 뇌물이 오가는 건 다반사인데 왜들 놀라고 검찰까지 나서서 수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법은 우리가 만든다. 우리가 만든 법이니 우리는 법 위에 있다’는 생각이 없다면 가능한 말일까. 면책특권, 불체포특권까지 누리며 위법을 죄라고 생각 못 하는 사람들이 1인 헌법 기관,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현주소다.  
 
저 청청한 하늘/저 흰 구름 저 눈부신 산맥/왜 날 울리나/날으는 새여/묶인 이 가슴//밤새워 물어 뜯어도/닿지 않는 밑바닥 마지막 살의 그리움이여./피만이 흐르네//더운 여름날의 썩은 피//땅을 기는 육신이 너를 우러러/낮이면 낮 그여 한번은/울 줄 아는 이 서러운 눈도 아예/시뻘건 몸뚱어리 몸부림 함께/함께 답새라./아 끝없이 새하얀 사슬 소리여 새여/죽어 너 되는 날의 길고 아득함이여.//낮이 밝을수록 침침해가는/넋 속의 저 짧은/여위어가는 저 짧은 볕발을 스쳐/떠나가는 새//청청한 하늘 끝/푸르른 저 산맥 너머 떠나가는 새/왜 날 울리나/덧없는 가없는 저 구름/아아 묶인 이 가슴.
 
이 시는 김지하 시인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타는 목마름으로 쓴 ‘새’다. 김지하가 영욕의 몸을 벗고 지하로 돌아간 지 1년이 되었다. 감옥 너머의 새를 부러워했던 시인은 지금쯤 ‘저 청청한 하늘’을 날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도 ‘묶인 가슴’으로 울고 있을까. 아직도 끝나지 않는 고통의 노래, 시인의 업보였던 5·16과 5·18의 5월이다.

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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