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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산이 품은 가슴 아픈 삶

여덟 개의 산
(The Eight Mountains)

'여덟 개의 산'은 아이슬랜드의 포크록 밴드 시규어 로스(Sigur Ros)를 비롯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닐 영(Neil Young) 등의 가슴 저미는 음악들로 차있다. 영혼을 달래주는 애절한 사운드트랙과 대자연의 아름다운 경관을 접할 수 있는 힐링 영화. [Sideshow / Janus Films]

'여덟 개의 산'은 아이슬랜드의 포크록 밴드 시규어 로스(Sigur Ros)를 비롯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닐 영(Neil Young) 등의 가슴 저미는 음악들로 차있다. 영혼을 달래주는 애절한 사운드트랙과 대자연의 아름다운 경관을 접할 수 있는 힐링 영화. [Sideshow / Janus Films]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히말라야 산맥의 가장 높은 메루산 주변에는 여덟 개의 산과 여덟 개의 바다가 있다. 여덟 개의 산봉우리를 돌아본 사람과 메루산 정상에 올라 본 사람 중, 누가 더 많은 깨달음을 얻었을까?  
 
2017년 이탈리아 최고의 문학상 스트레가상과 프랑스 메디치상(외국어문학 부문)을 연이어 수상한 파올로 코네티의 소설 '여덟 개의 산'이 던지는 화두다.  작가는 그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 단지 산을 통해 인생의 운명적 우여곡절을 말할 뿐이다.
 
소설의 주옥같은 서정적인 문구들을 읽어 내려가는 나레이터 피에트로는 '브로크백 마운틴'의 잭을, 그리고 브루노는 히스 레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피에트로와 잭의 용모가 많이 닮았다. [Sideshow / Janus Films]

소설의 주옥같은 서정적인 문구들을 읽어 내려가는 나레이터 피에트로는 '브로크백 마운틴'의 잭을, 그리고 브루노는 히스 레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피에트로와 잭의 용모가 많이 닮았다. [Sideshow / Janus Films]

연인 관계의 두 연출가 샤를로트와 반더미르히 펠릭스 판흐루닝언(뷰티풀 보이)이 공동으로 각본을 쓰고 감독한 이 영화는 제 75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원작의 심오함과 성장통의 디테일들이 스크린에 감동적으로 옮겨졌다.  
 
영화 '여덟 개의 산'은 산을 배경으로 한 두 친구의 오랜 우정의 연대기라는 점에서 자연스레 앙 리 감독의 2005년작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아카데미상 감독상, 각본상 수상)'을 연상시킨다.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산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고 떨어져 있는 긴 세월에도 서로를 잊지 못했던 두 남자의 운명적 인연과 대조적인 캐릭터 설정 등 유사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동성의 로맨스가 개입되는 '브로크백 마운틴'과는 생을 관조하는 시각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산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따라 도시 소년 피에트로는 이탈리아 알프스 몬테로사 산기슭에 자리한 작은 마을 그라나에서 한여름을 보낸다. 피에트로는 그곳에서 11살 동갑내기 브루노를 만나 한여름을 함께 뛰논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을 떨어져 지낸다.  
 
아버지와의 불화로 오랫동안 산을 찾지 않던 피에트로(루카 마리넬리)는 31세의 성인이 되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에게 무너진 오두막이 있는 산지의 땅을 유산으로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0년 만에 다시 산을 찾은 그는 브루노(알레산드로 보르기)와 재회하고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을 이어간다. 피에트로는 아버지가 자신을 대신해 브루노와 교우하고 있었고 이곳에 집을 짓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산봉우리마다 남긴 아버지의 메모들을 발견한다.
 
두 사람은 무너진 집을 올리며 20년 만에 다시 한여름을 함께 보낸다. 각자의 아버지와 마찰하며 잃어버렸던 정체성과 혼돈이 두 사람을 더욱 가깝게 한다. 여름이 지나가고 피에트로는 가장 가기 힘든 방황의 길, 더욱이 머물기는 더 어려울 여정이 될 여덟 개의 산과 바다가 있는 네팔로 향한다. 네팔에서 아버지가 갈망했던 몬테로사 산을 껴안고 사는 친구 브루노를 생각한다.  
 
반면 산지에서 태어난 브루노는 몬테로사 산에 묻혀 살기를 원한다. 방랑자 피에트로와 은둔자 브루노, 그러나 둘은 모두 본질적으로 방황하는 영혼들이다.  
 
브루노는 피에트로를 통해 알게된 라라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으면서 점차 산의 야성을 잃어간다. 재정적인 어려움에 라라와의 불화가 잦아진다. 아내와 아이를 도시로 떠나 보낸 후 더 산에 집착하고 사람들을 멀리한다.  
 
피에트로는 친구를 도우려는 애절한 마음으로 몬테로사로 돌아온다. 그러나 브루노의 자존심은 친구의 도움을 수용할 줄 모른다. 폭설이 내린 산 속에서 브루노는 실종된다.
 
'여덟 개의 산'은 산업화 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간 피에트로와, 자연에 침투한 산업화의 영향으로 자아가 훼손되어 가는 산의 남자 브루노의 이야기다. 인간은 어느 곳에서나 고독하다. 그러나 인간은 공존함으로 잃어버린 가치를 회복하고 고독과 불안을 치유한다. 작가 코네티는 이러한 인간 본연의 문제들의 답을 자연에서 찾고자 한다.  
 
그가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언제나 그곳에 남아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산과 들, 풀과 시냇물, 그리고 돌들과 나무로 눈길을 돌리는 이유이다. 숭고하기까지 한 장엄한 산의 본성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 색들과 온화한 햇살은 인간의 마음속 빈 공간을 채워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도시와 문명을 떠나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 꿈틀거린다.
 
영화는 코네티의 삶을 관찰하는 섬세하고도 진지한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두 연출자의 카메라는 코네티가 소설에서 언급했던 삶의 디테일에 주목한다.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빛의 반짝거림, 산지의 맑은 호수, 어린애 같은 즐거움. 누군가를 보살피는 목가의 수고스런 손길들, 눈 덮인 산 그리고 두 주인공의 가슴 저리게 아픈 삶.
 
남아 있는 것이라곤 산 뿐이다. 두 남자는 결국 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의 막다른 곳에 이른다. 산에서 만난 이들에게 산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다. 산은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두 친구의 운명을 보듬어 안는다.  
 
흘러 가는 이 세월 속에 당신의 동반자는 누구인가. 간혹 문득 그리워지는 그 누군가가 당신의 마음속에 아직도 작은 메아리로 남아 있는가.

김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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