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여보게, 젊은이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왔습니다.”
“애기야. 잘 왔다. 저쪽 큰 언니한테 가서 인사하고 와.”
첫날 엄마가 간 양로 보건센터에서 있었던 일이다. 올해 80세인 엄마를 애기로 부른 두 할머니는 92세와 96세다. 그리고 큰언니라고 불린 휠체어에 탄 어르신은 올해 104세다. 큰언니와 엄마는 24살 차이 띠동갑이다. 20대 초에 첫 아이를 낳았던 시대에 사셨으니 거의 부모뻘이다.
고령화 시대다. 의학 기술의 발달, 생활 수준의 향상과 질 높은 삶을 추구하기 위한 개인의 선택과 노력 등으로 수명이 많이 연장되었다.
어려서 성대하게 치러진 환갑잔치에 초대받아 가서 잘 먹고 온 기억이 있다. 지금은 평균 수명이 늘어 환갑잔치를 크게 하지 않아서 엄마와 시부모님의 환갑잔치도 가족들만 모여서 조촐하게 지냈다.
혼자 집에 있는 것보다 동년배도 만나고 여가 활동도 하고, ‘젊은이, 아직 얼굴이 곱구먼“이라는 진심이 담겨 있는 말도 듣기에 엄마는 센터에 가는 걸 즐겨한다.
한번은, 센터에서 칠십 대에서 백 세를 어우르는 나잇대와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분들을 만나면 무슨 얘기를 주로 하느냐고 물었다. ”만나면 할 얘기 많지. 일제 강점기에 한 사 오리씩 걸어서 학교에 다닌 이야기며, 좋은 일본인 선생도 가끔 있었지만, 악질 일본인 선생 밑에서 공부한 얘기며, 8·15 광복과 6·25 사변 때 피난 간 얘기부터, 봄마다 있었던 보릿고개 이야기에, 이승만 박사가 초대 대통령이 될 당시 선거 이야기며. 할 얘기가 왜 없어. 끝이 없지.“
팔십이 넘으면 미모와 학력이 평준화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어릴 적 이야기가 대화의 메인 주제인 걸 보면 사회적 지위까지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
이분들은 학교 다닐 때 시험에 나올까 봐 부지런히 외우던 파란만장한 한국 근대사와 현대사를 직접 몸으로 사신 분들이다. 또한, 일찍 미국에 이민 와 여러 방면에서 처음으로 물꼬를 트신 분들이기도 하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먼저 와서 길을 여신분들이 있기에 뒤에 온 우리는 이미 다듬어진 길로 가는 문만 열면 되었다. 한국 이민 역사의 산증인들이다. 이렇게 생업인 식당에서, 가게에서, 사업체에서, 직장에서 성실히 일하신 분들이 계시기에 주류사회에서도 한인들은 근면 성실하다고 알려져 있다.
바야흐로 백세 시대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읽어간다고들 한다. 이들은 여유롭게 익어가신 분들이다. 호흡이 끝나는 날까지 몸과 정신이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누리시길 바란다.
이리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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