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이른바 ‘어권’에 관한 문제
한국어 교재를 만들 때 범용이라는 제목으로 모든 언어권, 모든 목적의 학습자를 대상으로 삼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어교육에서는 학습자의 종류 혹은 분류에 따라 교재를 세밀하게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언어권을 나누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학습자의 모국어와 목표어를 대조하여 설명한다는 장점도 있고, 어휘나 문법의 설명을 학습자의 모국어로 하여 이해를 돕는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특히 학습자가 동일 언어권인 경우라면 학습자의 언어로 개발된 교재는 매우 편리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언어권과 문화권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문화의 설명에도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위의 장점들 때문에 ‘언어권’이라는 말의 사용과 이에 따른 교재의 개발을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언어권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학습자의 나라, 민족 등에서 차이가 있는 집단이 바로 언어권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같은 집단으로 취급받고 싶지 않은 집단인 경우도 있습니다. 교육의 역효과라는 말은 이럴 때 쓰이는 말입니다. 같이 묶이고 싶지 않은데 함께 묶어 놓아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같은 중국어권이라고 하지만 중국과 홍콩, 대만의 학습자는 서로 다르거나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때로는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문자의 사용에서도 전혀 다른 모습을 나타냅니다. 언어표현 역시 다른 것이 많습니다. 중국어로 설명하였다고 하여도 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문화, 정치, 경제와 관련된 내용은 자칫하면 문제의 소지가 되기도 합니다.
러시아어권은 어떤가요? 이것도 매우 위험합니다. 러시아어권인 많은 나라는 소비에트 연합 시절에 억지로 러시아어를 사용하게 된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긴 세월 러시아어를 사용하였기에 러시아어가 제1 언어나 공용어인 경우가 많습니다만, 러시아어에 대한 태도는 서로 다릅니다. 벨라루스와 조지아 등의 경우도 입장이 다릅니다. 중앙아시아의 많은 나라도 러시아어로 수업을 듣거나 러시아어로 된 교재를 사용하는 것에는 생각이 다릅니다. 우즈베키스탄 등의 나라에서는 점점 러시아어 자체를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전에 스페인어권 교재를 만들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스페인과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은 모두 스페인어권으로 묶이지만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경우에는 스페인과 많은 언어표현에서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같은 언어권이라고 말하는 것을 그들도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어권은 어떤가요? 과연 영어권이라는 말은 성립은 할까요? 우리는 영어권이라고 하면 미국을 생각하고, 조금 더 나아가면 영국을 생각하고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등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어권에는 수많은 나라와 민족이 있습니다. 인도,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도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입니다. 영어권이라고 통칭하여 교재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요? 과연 공평할까요?
언어권은 범용의 범위를 줄인다는 점에서는 이점이 있지만 언어권 안에서의 차이점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언어가 같아도 서로에 대한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교재 속의 등장인물로는 적당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만났던 아랍어권 학습자를 가르치는 교수의 반응도 그러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언어권보다는 학습자의 범위를 좁게 하여 가르치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교재도 세밀하게 개발하여야 합니다. 영어권도 하나가 아닙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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