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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가스라이팅 주의보

2020년에는 ‘팬데믹’을, 2012년에는 ‘백신’을 그해의 단어로 선정했던 미국 유명 사전출판사 메리엄 웹스터(Merriam Webster)가 2022년에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선정했다. 가스라이팅이 전년보다 무려 1740배의 검색 증가를 보였기 때문이다. 팬데믹, 백신과 나란히 그해의 단어로 선정될 만큼 무게가 더해진 이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는, 1938년 영국 극작가 패트릭 해밀턴이 쓴 ‘가스등(Gas Light)’이라는 희곡에서 유래됐다.  
 
후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희곡에서, 잭은 위층 어느 귀부인의 보석을 훔치려다 그녀를 살해한다. 하지만 정작 보석을 못 가져와, 그는 자꾸 위층 그 집에 가서 가스등을 켜고 보석을 찾는다. 일정 분량 연료를 아파트 모든 집이 나눠 썼기 때문에, 그때마다 그의 집 가스등은 침침해진다. 하지만 그에 대해 불평을 하는 부인 벨라에게, 남편 잭은 헛것을 보았다며 아내의 정신이 이상한 것처럼 말한다. 물건을 일부러 감추고 물건 못 찾는 아내를 다그치거나, 일부러 소리를 내고 아내가 헛소리를 듣는 것처럼 한 것도, 벨라가 마침내 자신이 미친 게 아닌가 의심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속 이단 교주들의 과대형 망상장애와 극단적 자기애에 대해 지난 두 칼럼에서 나누면서, 가해자인 이들이 피해자인 신도들에게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가스라이팅이라고 말했었다. 이렇게 타인의 심리를 조작해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뜻의 가스라이팅 피해자들은 생각보다 광범위하다. 평범한 가족, 연인, 친구 관계나, 직장 동료 사이에서도 가스라이팅은 일어날 수 있다.
 
최근 심한 자기애적 성격장애자인 남편으로부터 평생 정서적, 언어적 학대를 당하며 사는 아내들을 여러 명 만났다. 누가 봐도 가스라이팅 피해자였다. 화병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원래도 낮았던 자존감이 거듭되는 가스라이팅으로 아주 바닥을 쳤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요? 종일 혼란스럽고 멍하니 있을 때가 많아요. 내 잘못도 아닌데 자꾸 사과해요. 내가 너무 바보 같아요. 남편이 화를 낼까 무서워 자주 거짓말을 해요. 이런 남편이라도 떠날까 봐 두려워요. 떠난 남편을 찾아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하며 다시 데려왔어요.  
 


이들이 자신이 가스라이팅 피해자이며 상대방이 가스라이터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 치료와 회복의  시작이다. 이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상대에게서 심리적으로라도 벗어나게 하는 데는 상담자와의 깊은 신뢰관계와 오랜 기간 상담이 필요했다.  
 
또한 작년, 가스라이팅이 그해의 단어로 선정된 것은 본래의 타인에 대한 정신적 지배라는 의미보다는, 요즘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속이는 행위’라는 의미로도 확장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메리엄 웹스터의 편집자인 피터 소콜로스키는가스라이팅을 “거짓말을 멋지게 표현한 단어”라고 했다. 요즘 너무 많은 거짓말이 그럴싸하게, 멋지게 표현된다.  
 
지난 주말 시카고에서 있었던 한 흑인·백인 커플에 대한 50여명 젊은이의 집단 공격 장면에서 그들의 SNS에 “Yay, we get active”라고 쓰여 있던 것이 잊히지 않는다. ‘폭력’을 ‘액티브’란 말로 표현하는 이들이 다른 젊은이들을 가스라이팅시킬까 걱정이다. 범람하는 가짜 뉴스, 음모론, 딥 페이크(deep fakes), 각종 SNS 상의 잘못된 메시지들이 앞으로도 얼마나 대중을 가스라이팅시킬지, 우리 모두 가스라이팅 주의보를 발동시킬 일이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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