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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이야기] 조선의 신도시 수원

경기도의 행정과 경제의 중심지
정조가 계획·조성한 조선 신도시

경기도에서 제일 큰 도시인 수원은 한국에서 일곱 번째로 인구가 많고 경기도청 소재지다. 삼국시대부터 경기도가 있는 한강 유역은 치열한 영역 다툼의 현장이었으며,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특히 수원시는 경기도의 행정과 경제의 중심지적 위치에 있는 자족도시다. 역사적으로 봐도 신석기 시대인 20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거라고 추정되며, 백제, 고구려를 거쳐 신라 시대에는 ‘물골’이라 불리었다. 그 후로 수성, 수주를 거쳐 조선 시대에 수원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됐다.  
 
이렇게 지명의 변천 과정에서 ‘물’의 의미가 그대로 내려져 온 것은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광교산, 칠보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지역 하천으로 잘게 쪼개져 흐르는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추측도 있다. 대대로 수원시는 ‘물의 도시’답게 수해 예방 및 방어에 뛰어난 것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수원 지역의 경우 수해 피해가 거의 없는 편이다.
 
수원은 정조가 계획하고 조성한 ‘조선의 신도시’다. 왕권 강화와 조선개혁을 목표로 정조는 작은 고을이었던 수원에 새 도시를 건설하기 위하여 정약용을 포함한 실학자들과 함께 수원화성이라는 성곽건축물을 건설했다.  
 


그리고 화성을 중심으로 수원을 발전시켰다. 결과적으로 수원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정조의 압도적인 지원으로 당시 평양을 넘어 조선의 수도인 한양과도 어깨를 견줄만한 도시로 성장했다.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이전시키고, 틈만 나면 도성인 한양에서 수원으로 행차하였는데 이 정조의 행차에 유래하여 아직도 ‘정조 행차축제’라는 수원의 문화 축제로 남아 있다.  
 
정조는 화성 행군의 규모를 대대적으로 늘리며,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에 수원을 상왕의 수도로 만들 계획을 했다. 정조는 완전히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수원을 자신의 개혁 터전으로 삼아 조선 전체를 개혁하는 또 하나의 수도로 만들고자 원대한 꿈을 품고 화성을 축성한 것이다. 이때 정조가 건설한 수원화성은, 서양의 건축법과 조선의 미를 적절하게 융합한, 조선 건축의 꽃으로 불리고 있으며 수원을 상징하는 절대적인 존재로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한편 화성이 지어지기 전인 1789년, 정조 13년에 현재 수원시의 중심에 있는 팔달산 동쪽 기슭에 수원화성의 행궁이 건립되었다. 행궁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무는 궁인데, 화성 행궁은 567칸으로 다른 행궁의 2배 정도 규모로 국내 행궁 중 가장 크다. 또 행군이지만 정궁 형태를 갖추어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깃들어 있어 조선 시대 건축의 백미로 꼽힌다.
 
인구 120만 명의 수원시는 면적 대비 시가지가 상당히 넓은 편이며, 현재는 광교 신도시가 수원의 경제, 교통, 산업, 행정 및 교육의 중심지이다. 그리고 수원시 경제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본사인 삼성디지털시티가 이곳에 있으며, SK 산업이 수원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성균관 대학교, 아주대학교, 경기대학교 등, 여러 학교가 이곳에 있어 교육 인프라도 좋다.
 
▶문의: (818)497-8949

미셸 원 / BEE부동산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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