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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허무의 큰 괄호 안에서

꽃이나 잎은/ 아무리 아름답게 피어도/ 오래 가지 못하고/ 결국은 지고 만다.// 그런데도 滅亡을 알면서도/ 연방 피어서는/ 야단으로 아우성을 지른다.// (…)아, 사람도 그 영광이/ 물거품 같은 것인데도 잠시/ 虛無의 큰 괄호 안에서 빛날 뿐이다.
 
- 박재삼 시인의 ‘虛無의 큰 괄호 안에서’ 부분
 
 
 
하고 싶은 말을 한꺼번에 쏟아내듯 꽃들이 만개한다. 개나리꽃은 개나리의 말을, 목련꽃은 목련의 말을 수화처럼 하더니 이제 벚꽃이 뒤를 잇는다. 꽃의 속내를 다 알아차릴 수는 없지만 그 눈부심만으로도, 그 찬란함만으로도 꽃이 전하는 말을 어림잡아 볼 수 있겠다.
 


꽃은 꽃으로 피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 모진 담금질을 해왔을까. 차가운 땅 밑에서 혁명을 도모하듯 발버둥을 친 것은 아닐까. 한 번쯤 세상에 던지고 싶은 말을 준비하느라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봄 어느 날 잠깐 피었다가 산화하듯 지고 만다.  
 
난분분 흩날리는 꽃그늘 아래 앉고 보니 사람도 허무의 큰 괄호 안에서 잠깐 빛날 뿐이라는 옛 시인의 말이 어떤 울림처럼 다가온다. 꽃이 지는 것이 허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꽃의 유한함을 생각해 본다면 허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싶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인생의 사계절을 살아가는 일은 지극히 숭고한 일임에 틀림없다. 한때 꽃처럼 빛났든 그렇지 못했든지 상관없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으로도 지극한 일이지 않은가. 그러나 사람이 죽음을 피할 길이 없으므로 그 모든 게 덧없고 덧없다.  
 
겨울이 지나고 해빙 무렵 지인 몇 분이 돌아가셨다. 죽음에서 예외가 되는 사람은 없다. 하늘의 뜻을 비껴갈자는 없으므로 우리의 인생도 허무의 큰 괄호에 묶여 있음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치열하게 산다. 만개한 꽃이 어느 날 불어온 바람에 다 떨어지듯 사람도 아등바등 살다가 어느 순간 이승을 등진다.  
 
‘존재하는 어떤 것에도 의미가 없다’라고 해석되는 허무주의, 허무의 저류를 철저히 파헤쳐 하나의 명확한 사상으로 끌어올린 이는 독일 철학자 니체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허무에도 수동적 허무와 능동적 허무의 두 유형이 있다. 허무의 현실을 초극하려는 노력이 능동적 허무라고 규정한다. 능동적 허무란 허무를 단순한 생의 소모 원리가 아닌 적극적인 창조원리로 전환해 나가는 방식이다. 능동적 허무야말로 허무의 지배 아래서 앓고 있는 현대인들이 취할 마땅한 생활방식이라는 것이다.  
 
허무란 자칫 허무의 늪에 빠져 찰나적 향락이나 소모적 생활로 병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허무를 직시하고 수동성을 넘어서 능동적인 측면으로 다가간다면 삶의 또 다른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 존재의 유한성 때문에 허무가 찾아오지만 허무의 능동적인 측면에 기대 바라볼 때 그 유한함 때문에 사람도 소중하고 꽃도 더 아름다운 것 아닐까 생각된다. 태어나는 것은 반드시 죽는 존재의 한계성 때문에 우리는 더 치열해질 수 있다. 허무를 체감하기 때문에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순간의 가치를 놓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산다.
 
비록 허무의 괄호 안에서 빛날 뿐인, 잠깐 피었다 지는 꽃일지라도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서 아우성을 치는 일은 얼마나 값진 일인가. 한 송이 꽃이 되어 야단을 떠는 일은 또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 이 봄, 벚꽃 날리는 공원을 거닐며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환호하는 것은 꽃들도 언젠가는 지고 나도 언젠가는 떠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진즉에 알기 때문이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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