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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영혼은 길들여진다

나에게 영혼이란 단어는 친숙하다. 물질적인 부를 축적한 사람보다 아름다운 영혼을 소유한 자는 항상 나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요즘에는 과연 그 영혼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사전을 찾아보니 영혼이란 인간에게 비물질적인 부분으로 그 삶의 성격, 인격, 지혜, 의지 그리고 감정을 포함한 그 사람을 살아있게 하는 전체 혹은 모든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죽음이란 영혼이 떠난 상태를 말하지 않을까. 이 영혼이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는 문제는 종교에 관한 이야기이다.  
 
최근에 한 죽음을 지켜보게 되었다. 한 65세 남성이 간질성 폐 질환(다양한 염증세포의 침윤, 섬유화가 진행되어 폐가 점점 딱딱하게 굳어가는 질환)으로 폐 이식 수술받고자 입원했다. 컴퓨터 공학박사로 62세에 정년퇴직한 후 최근에 급속도로 악화하여 24시간 산소공급이 필요하게 되었다. 숨쉬기조차 힘이 드는 환자는 먹는 일과 배변하는 일도 큰 노동이었다. 한 3일을 간호하면서 환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많이 가까워졌다.  
 
장기이식은 기증자뿐만 아니라 수혜자도 철저한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몸 내부에 있는 각 장기와 조직이 거의 완벽한 상태에 있어야 기증받아도 별 탈 없이 안정된다. 한 2주 동안 수많은 테스트를 통과한 후 이제 겨우 수혜자의 명단에 올랐다. 지금부터는 매치가 되는 기증자만 기다리면 된다. 이제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옮겨졌다. 왜냐면 특별히 중환자실에서 해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 이 무슨 불행한 일인가! 환자는 사흘 만에 심한 호흡곤란으로 인공호흡기를 꽂고 중환자실로 옮겨왔다. 급성폐렴이었다. 환자는 이미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너무나 안타까웠다. 폐만 제외하고는 모든 검사 결과 건강이 양호한 상태였는데도 그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간질성 폐 질환에 급성폐렴은 치명적이었다. 간헐적으로 의식이 오가고 있었지만 날마다 그는 쇠약해갔다.  
 
그동안 나는 환자와 그 가족과 나누었던 많은 대화를 통해 그가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었다. 책임감 있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장기수혜자 명단에 오른 것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했다. 그는 한편 이식받은 후 기증자와 수혜자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하는 봉사활동을 하고자 하여 나에게 크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결국 그는 일어나지 못했고 2주 만에 의식이 완전히 사라져갔다. 그는 그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따뜻한 사람이었다. 분명 여기까지 오는데, 그리고 그 사실은 다 수용하기까지 부정과 절망, 고통과 괴로움을 다 이겨내고 이 모든 불편한 감정을 극복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죽음은 모든 생명체가 겪어야 하는 자연현상이다. 사고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생로병사를 피할 수는 없다. 나에게 죽음은 삶을 밝혀주는 바탕화면이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값진 것이 아닐까.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그냥 “그대”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 자체로 존중이고 사랑이다. 김춘수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그냥 지나칠 수 있다. 이름을 불러주고 관계를 맺음으로써 우리의 의식 중에 사랑이 싹트고 집중하고 몰입하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최근에 출간된 이다희의 ‘사는 마음’에서는 ‘물건에도 영혼이 있다. 하지만 공장에서 나오자마자 영혼이 있는 건 아니다. 아이가 사랑해야 장난감은 영혼을 갖는다’라고 했다. 영혼은 어디에든 있다. 단지 내가 그 영혼을 인지하고 키워나가야 한다. 햇빛과 물 그리고 사랑으로 자양분을 공급할 때 아름다운 영혼이 자라게 된다. 어린 왕자가 여우를 길들이며 관계를 맺는 장면처럼 ‘만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린 서로가 필요하게 되지, 넌 나에게 하나밖에 없게 될 테니까.’ 영혼은 길들여진다.

정명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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