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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강된장

‘짠 된장 내가 부엌 가득히 퍼졌다. 강된장은 겨우내 떨어지지 않고 밥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매일 물을 조금 더 붓고 된장을 풀어 다시 끓여낸 강된장은 봄이 다가올 즈음이면 아무리 솜씨 좋은 사람도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맛이 났다.’ 정지아 작가의 단편소설 ‘풍경’의 한 단락이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으스스한 오늘 같은 날 강된장을 끓이면 남편이 좋아할 것이 뻔하다.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갔다. 뚝배기에 물을 붓고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뚜껑을 덮다가 집안을 둘러보며 짠 된장 냄새는 어쩌지? 창문을 모두 열고 천정에 달린 팬도 틀었다. 된장을 넣으려다 유튜브에서 강된장 끓이는 법을 찾았다. 호박도 매운 고추도 있어야 한다. 없다. 더 들여다보다가는 없는 재료를 탓하며 부엌을 나갈지도 모른다. 친정아버지 말이 떠올랐다.  
 
“한국에서 여행하다가 잘 모르는 식당에서 뭘 먹을까 망설일 때는 무조건 된장찌개를 주문해. 음식 못하는 식당도 된장찌개는 먹을만하다.”
 
친구가 서울에서 공수해 준 갯벌 색을 띤 씁쓸한 된장과 멸치를 넣고 양파와 감자를 잘게 썰어 넣었다. 작가가 ‘양념 같은 강된장’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된장을 더 넣었다. 짜다. 물기 없는 된장찌개다. 강된장에 상추와 묵은김치가 올려진 밥상은 산골 툇마루에 놓인 소설 속 밥상과 같다. 흰머리에 굵은 주름 그득한 남편과 내가 밥상을 마주했다. 시골 밥상과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노부부다.
 


“아~ 맛있다. 어쩌다가 이런 실수를?”
 
“서울에서 가져온 된장에 있는 것 막 때려 넣고 물이 쫄 때까지 자작자작 끓였더니. 꽁보리밥만 곁들이면 딱 맞는데.”
 
“근래 들어 최고의 밥상이야.”
 
“밥하기 전에 읽은 단편소설인데, 100살을 바라보는 노망난 엄마와 환갑을 바라보는 아들이 산 중턱에 다 쓰러져가는 집에 살아. 위로 많은 형제는 모두 집을 떠나고. 옛날 이사할 때 아궁이 불씨를 살려서 화로에 담아 옮기듯 엄마가 평생을 끓였던 강된장을 막내인 남자가 겨우내 끓여 먹는다는 이야기야. 매일 물을 더 붓고 된장을 풀어 다시 끓이면 깊은 맛이 난다는 대목에서 나도 끓이고 싶더라고. 짜. 많이 먹지 마요. 남기면 나도 물과 된장 조금 더 넣고 날씨가 풀릴 때까지 끓이고 싶은데. 냄새 때문에 더는 안 되겠지.”  
 
남편은 강된장을 떠먹을 때마다 뜨겁다고 얼굴에 온갖 주름을 잡는다.  
 
자식들과 강된장에 꽁보리밥을 먹던 기억으로 사는 노망난 엄마와 육십 평생 여자를 품어보지 못한 남자가 툇마루에 앉아 읍내로 가는 신작로를 바라보는 소설 속의 풍경이 잊히지 않는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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