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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월미도

지난봄 LA로 돌아온 지 일 년 여 만에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은 꽃샘추위로 아침저녁은 약간 쌀쌀하지만, 낮에는 포근한 봄 날씨에 움츠렸던 몸과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앙상했던 나뭇가지에는 초록색, 연두색 잎들이 싱그럽고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 등이 저마다의 화사함으로 겨우내 황량했던 도심을 화려한 봄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올해 들어 LA답지 않게 날씨가 춥고 비가 계속 와서 우울했던 마음이 한국 와서 산뜻하게 기분전환이 됐다. 다만 한국에는 봄의 불청객 미세먼지가 반갑지 않다.  TV만 틀면 나오는 유치한 정치인들의 싸움도 여전해서 내 마음을 어지럽게 만든다.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4월 초, 영종도에 사는 가까운 지인이 집으로 초대했다. 코로나 전에 영종도에 몇 번 갔었는데 그때는 공항철도를 타고 영종대교를 지나서 갔다. 탁 트인 바다가 보여 설렜던 기억이 났다. 이번에는 월미도 선착장에서 영종도로 가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방법을 택했다. 자동차도 여러 대 실을 수 있는 그림 같이 아름다운 큰 배를 탔는데 배 주변으로 갈매기들이 엄청 많아서 놀랐다. 숫자가 많을 뿐 아니라 공격적으로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히치콕 감독의 ‘새’ 영화를 연상시켰다.  
 
왜 그렇게 월미도에 갈매기들이 많은지, 또 배의 안팎에서는 새우깡을 파는 곳이 왜 그리 여러 군데 있는지 의아했는데 그 의문은 곧 풀렸다. 새우깡은 사람이 먹으려는 게 아니라 갈매기의 먹이였다. 배에 탄 사람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새우깡 봉지를 손에 들고 하나씩 꺼내 손가락에 쥐고 있으면 갈매기들이 순식간에 날아와서 탁 채 갔다. 갈매기들은 사람이 주는 새우깡을 받아먹으려고 월미도에서 영종도까지 왔다 갔다 배를 따라다녔다. 새우깡 맛에 길들여진 갈매기가 자꾸 늘어나고 있어 큰 문제라고 한다. 새우깡을 주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 없는 갈매기들에게 사람들이 자꾸 먹이를 주는 바람에 갈매기 스스로 먹이 사냥을 안 하게 만들고 있다. 요즘 갈매기뿐 아니라 비둘기는 닭둘기가 된 지 오래고 어느 나라의 가마우지는 날개가 퇴화하고 새들이 날지를 않는다고 한다.
 


배를 타고 가다 보니 저만치 말로만 듣던 월미도와 영종도 사이에 위치한 작약도가 보였다. 작약도는 무인도로 섬 모양이 작약 꽃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인천시가 장기간 방치된 작약도를 매입해 유원지로 개발하려 했으나 최근 900억원에 민간업체에 넘어가 무산됐다고 한다.  20여분 배를 타면서 갈매기들에게 새우깡 주는 체험도 하고 시원한 바다와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이 가슴에 새겨진 행복한 경험이었다.  
 
점심을 먹고 밀린 이야기를 나눈 후 월미도 선착장으로 다시 돌아오니 주말이라 그런지 1박 2일 코스로 많은 사람과 차들이 그때까지 배를 타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월미도는 섬의 모양이 달의 꼬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월미도라 하면 바닷가로만 생각했는데 인천 ‘월미공원’이 있어 봄가을로 여러 가지 꽃과 식물들을 볼 수 있고 국내 유원지를 대표하는 ‘월미놀이공원’이 있는 관광지로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인천에는 국내 최초, 최대의 차이나타운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 외에도 인천에는 가 볼 만한 명소가 많이 있다고 하는데 당일치기로는 힘들어 다음 기회에 가보기로 했다.  
 
이번 월미도 탐방이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은 역사적인 인천 상륙작전의 첫 도착지점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월미도 유람선 선착장 부근에 세워진, 인천상륙작전의 첫 번째 상륙지점인 녹색 해안을 표시한 기념비를 보며 긴박했던 당시 역사의 숨결을 느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불과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낙동강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전 지역을 점령당했다.  
 
1950년 9월 15일 새벽, 유엔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진두지휘 아래 인민군이 점령하고 있던 인천에서 유엔군과 국군이 펼친 작전이 대성공을 거두었다. 모두가 미친 작전이라고 의심했던 인천상륙작전이었다. 그때부터 전세가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은 가장 성공적인 군사작전의 하나로 전쟁사에 기록되고 있다. 책으로 읽고 영화로 봐서 알고는 있었지만 월미도에 와서 직접 확인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또한 잊고 있던 맥아더 장군의 인상적인 모습이 소환됐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콘파이프 담배에 속칭 ‘라이방 선글라스’와 삐딱하게 모자를 쓴 맥아더 장군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맥아더 사령관은 만주 폭격을 계획했다.  그러나 트루먼 대통령과의 갈등 끝에 사령관에서 해임되면서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는 미국으로 귀국한 뒤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한 은퇴연설 말미에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만약 그때 맥아더 장군의 뜻대로 만주폭격을 감행했더라면 우리나라 역사도 달라졌을 것이다.  
 
4월! 박목월 시인의 ‘4월의 노래’ 를 조용히 읊조려 본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시로 김순애 작곡의 노래로 더욱 유명해진 시이다.  
 
목련 꽃 그늘 아래서 /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 꽃 그늘 아래서 /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다워 눈물이 난다.  세파에 찌든 우리네 마음을 정화해 준다. 영종도 어느 공원에 하얀 목련 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기막히게 아름답다고 하는데 목련화가 지기 전에 목련 꽃그늘 아래서 LA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지저분한 한국 정치에 얼룩진 마음을 깨끗이 씻고 싶다.  

배광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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