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 본분 망각한 LA시의회의 일방통행
말의 발굽 밑에 U자형으로 붙이는 쇠붙이인데 발톱과 발목을 보호하고 흙이 아닌 포장도로에서도 잘 견딜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보조 장치다. 미국 내 두 번째 대도시이자 400만 시민을 대변하는 LA 시의회의 별명도 바로 이 편자다. 생긴 모양새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2001년까지 시의회 의장을 지낸 존 페라로의 이름을 붙인 시의회 본회의장은 청사 3층 동편에 있는데 U자 모양의 아래에 의장이 앉고 위에 트인 방향으로는 시민들이 발언하는 단상과 방청석이 있다.
시의회 분위기는 종종 치열하다. 의원들은 의외로 평온하고 차분하지만, 시민들의 발언에는 꾸지람과 훈계 등 격정이 넘치기도 한다. 시의장은 시의회를 비웃고 고성과 잡음으로 회의 진행을 방해하는 시민들과도 끊임없이 신경전을 펼쳐야 한다. 시의장과 재석 시검사가 단골 방해꾼들의 이름까지 외우고 있을 정도여서 때론 희극적(?)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시의원들은 때로 야유를 감수해야 하고 지지자들의 박수에는 우쭐대기도 한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경관들이 강제 퇴장 조치를 집행하기도 하니 마냥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분위기다.
대의 정치는 그래서 어렵다. 주권자들은 투표로 권리를 행사하고, 선출된 대리자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들의 민심까지 헤아려 원만하고 보편타당한 의정 활동을 해야 한다.
미국 내 가장 큰 한인타운이 포함된 LA 10지구를 대변해 임명직 시의원이 2년 넘게 활동하도록 허용한 대리자들의 결정을 놓고 한인들은 속을 끓이고 있다. 대리자들의 재량권이 주권자들의 선출권을 묵살한 것은 아닌지, 비용 절약을 위해 신성한 선출권은 어디까지 유보되어야 하는지, 대리자들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 주권자의 관리·감독은 어디까지 필요한 것인지 등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들이 많다.
폴 크레코리언 시의장은 “임명해 놓고 잘한다고 판단되면 다음 선거에서 당선시켜 일을 더 하게 만들면 되고, 아니면 다른 사람을 찍으면 된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대리자리기보다는 통치자 같은 접근이다. 그렇게 2년 넘게 임명직 시의원 활동을 하고 나서 심판받을 자격과 권리는 왜 허트 에게만 허용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왜 다른 라틴계나 아시아계 리더들에게는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인가.
11일 허트 임명 이후 시의원들은 하나같이 인터뷰 요청에 답하고 있지 않다. 허트 임명에 유일하게 반대했던 모니카 로드리게스 의원 조차도 짧은 입장문만 보내왔다.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습니다. 시의회는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대중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며 그것은 바로 ‘보궐선거’ 입니다.”
시의회가 대리자들의 집합이라기보다 ‘권력’임을 분명히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대리자의 권력남용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답해야 할 차례가 아닌가 싶다.
서부 개척시대에 편자는 보통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재료인 철은 악의 기운을 물리친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편자를 고정하는 데도 7개의 못을 사용해 행운을 담았다고 한다.
대리자가 당락의 곡예를 펼칠 때 유권자도 함께 울고 웃는다. 하지만 편자가 그렇듯이 닳거나 녹슨 대리자가 있다면 과감히 뽑아내야 한다. 못이 빠지거나 타이어처럼 마모가 불균형한 편자는 말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한다. 그대로 두면 결국 말과 말을 타는 기수에게도 치명적이다. 말의 편자를 관리하는 것이 ‘장제사’라면 시의회를 감독하는 장제사는 유권자다.
지금이라도 ‘시의회 편자’에 앉은 의원들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대리자의 일’을 더욱 신중하게 해나가길 바란다. 항상 장제사가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최인성 / 사회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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